황우석 파문이 남긴 것..`그래도 미래는 있다`

생명윤리 취재윤리 논란에서 `황빠` `황까` 대립까지
  • 등록 2006-01-10 오후 1:51:50

    수정 2006-01-10 오후 1:51:50

[이데일리 김경근기자]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10일 최종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황우석 사태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조사위는 결국 황우석 박사의 연구성과가 거짓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황 박사가 요구한 재연 실험 기회도 주지 않기로 했다.

지난 두 달 남짓 숨가쁘게 전개된 황우석 사태는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황우석 박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대다수 국민들은 허탈감, 나아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게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고 갈 국민적 영웅이라고 믿었던 황 박사가 거짓말로 전국민을 기만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황우석 사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져준 문제점들을 짚어 본다.

◇생명윤리 논란

황우석 사태는 생명윤리 논란에서 출발했다. 지난 2004년 영국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황 박사팀이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실험에 필요한 난자를 공급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 박사팀에 소속된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이전까지 생명윤리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지난해말 생명윤리 위반이 밝혀졌을 때 황 박사는 국익과 불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호소하며 절묘하게 여론을 몰아가는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생명윤리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초기부터 있어왔다. 지난해 1월 생명윤리기본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황우석 사태로 생명윤리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한국 과학기술계 신뢰 추락

황우석 사태가 남긴 가장 큰 문제중 하나는 한국 과학기술계의 신뢰 추락이다. 과학계에선 “황 박사의 논문조작 때문에 앞으로 세계 과학계가 색안경을 끼고 한국 과학자들을 볼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황 박사 논문을 실은 사이언스는 “한국 과학자들을 차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향후 더욱 까다로운 잣대로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을 심사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 박사 논문에 의혹을 제기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한국 과학계가 자정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네티즌들의 극단적인 대립과 맹목적 애국주의

황우석 사태는 네티즌들의 극단적인 대립을 낳았다. 황 박사를 지지하는 진영과 그 반대 그룹의 대립이 감정싸움으로 번져 회복하기 어려운 골을 남겼다. 이른바 ‘황빠(황우석 박사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그룹)’과 ‘황까(황 박사를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그룹)’라는 단어가 나돌 만큼 서로를 비난하며 날을 세웠다.

황우석 사태는 의견이 다른 두 집단의 대립보다 더욱 근본적인 우려를 드러냈다. 바로 맹목적인 국익주의다. 황 박사팀의 생명윤리 문제가 제기됐을 때 전국민이 똘똘 뭉쳐 사실을 보도한 MBC를 맹비난했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상식조차 통하지 않았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생명윤리쯤은, 언론의 본분쯤은 덮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이는 진보와 보수라는 한국사회 뿌리깊은 이념적 골을 넘어설 정도였다.

황 박사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대립은 맹목적이고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냉전시대 사고방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취재윤리 문제 대두

황우석 사태의 영향은 과학계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황우석 사태를 보도한 언론들의 취재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황우석 사태를 최초로 보도한 MBC는 황 박사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의욕이 앞서 취재원이 위협으로 느낄 수 있는 협박을 한 것으로 알려져 한때 위기에 몰렸다.

언론의 취재윤리는 단지 MBC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MBC가 취재과정에서 윤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면 다른 언론은 지나친 ‘황우석 영웅’ 만들기에 빠져 언론의 본분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황 박사가 특유의 친화력과 신뢰감으로 취재기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객관적이고 균형잡인 시각을 유지해야 하는 기자들이 앞다퉈 황우석 영웅 만들기에 몰두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스타 과학자 만들기의 역효과

황우석 사태는 한국 과학기술계를 활성화하려는 지나친 의욕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침체된 과학기술을 활성화하고 이공계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정부와 언론은 ‘스타 과학자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유명한 과학자가 있어야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한국 과학기술계가 되살아 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요구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과학자가 황우석 박사였다.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키워줄 스타 과학자 만들기 열풍이 결국 황우석 사태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래도 미래는 있다

황우석 사태로 한국 과학기술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상처를 입었지만 모든 걸 잃은 것은 아니다. 황우석 사태는 역설적이지만 한국 사회를 한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과학기술계가 보다 객관적인 검증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허황된 꿈에 기댄 무모한 연구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분야 투자도 합리적으로 집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줄기세포 치료 연구도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황우석 사태는 맹목적인 민족주의, 국익주의에도 경종을 불러 일으켰다. 불과 두 세 달 전만해도 황우석 박사에게 조금이라도 의혹을 제기하면 무조건 비난하던 네티즌들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황우석 사태는 대한민국에 여전히 아픔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과학기술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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