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을 비롯한 산유국이 감산 합의 이행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 수입을 줄이겠다는 ‘에너지 자립’ 카드를 꺼내들며 유가 상승의 발목을 잡을 태세다.
주요 산유국, 감산 이행 의지 재확인
산유국 감산 이행 모니터링 위원장을 맡은 에삼 알 마르주크 쿠웨이트 석유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산유국 회의 후 “모든 국가가 모니터링 체계에 대해 전면적으로 합의했다”며 “감산은 100% 이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24개 산유국은 지난해말 유가를 지지하기 위해 올 상반기에 하루 180만배럴 규모로 감산키로 합의했다. 공급을 줄여 가격을 높이자는 것. 실제 합의후 유가는 약 20% 올랐다. 그러나 한 나라라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다시 가격경쟁에 따른 유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쿠웨이트·러시아·알제리·베네수엘라·오만 5개국 장관으로 꾸려진 감산 이행 모니터링 위원회는 각국 산유국 장관이 매달 만나 17일에 보고서를 제출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위원회 이사국 장관은 오는 3월17일과 5월에 다시 만나 추가 논의키로 했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조사기관 IHS과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와 함께 각국 제출 데이터를 평가할 것“이라며 ”위원회는 감산 목표의 준수 여부를, 기술 그룹은 수출 자료까지 조사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산업부 장관도 “(감산) 합의는 멋진 일”이라며 “내가 아는 한 역대 최고의 합의였다”며 그를 거들었다.
트럼프 ”원유 수출 축소 에너지 자립 추진“
이 가운데 20일 트럼프의 미 대통령 취임이 국제 유가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취임 후 미 백악관은 웹사이트에 미국내 미개발 에너지를 개발해 OPEC 등 자국 이익에 적대적인 국가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팔리 장관은“미국과 우리의 에너지 협력 관계는 세계경제 안정에도 매우 중요하다”며 “트럼프 행정부와도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알 팔리는 또 “미국이 원유 수입을 줄이면 다른 곳으로 수출하면 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넬슨 마르티네즈 베네수엘라 장관은 “에너지 업계는 상호 의존성이 높으며 이 관계가 유지되는 게 모두에게 좋다”며 “(미국) 수출 물량은 유지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에도 미국이 원유 수입을 줄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앞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10년 전인 2006년 “석유에 중독돼 있다”며 OPEC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공약했으나 정작 부시 행정부 시절 원유 수입량은 10% 늘었다. 게다가 미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트럼프의 에너지 자립 정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연준은 트럼프의 경기부양정책이 잘 이행될수록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 긴축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금리 인상은 미 셰일오일 업계의 자금 조달을 제한할 수 있는 요소다. 함자 칸 ING은행 원자재 전략부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금리 인상으로 셰일 시추기업의 대출이 더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