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에 걸린 어른들

  • 등록 2007-01-31 오후 5:03:22

    수정 2007-01-31 오후 5:03:22

[조선일보 제공] 결혼생활 10년 차인 강 모(35)씨는 항상 가족들을 불안하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부인에게 “집을 계약했으니 이사 준비를 하라” “퇴근해서 해외 여행을 떠날 테니 지금 당장 가방을 꾸려라”고 말한다.

직장생활도 문제투성이다. 수시로 동료들과 다투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회사도 여러 번 옮겨야 했다. 박 모(32)씨는 어린 시절부터 화를 못 참았다. 요즘도 부인과 말다툼을 시작하면 물건을 부수고 폭력으로 끝을 맺는 일이 다반사다.

은행 등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조금만 늦어져도 화를 내며 물건을 집어 던져 주위 사람을 당황케 한다. 김 모(여·29)씨는 중요한 물건을 수시로 잊어버린다. 작년에는 직장에서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려 해고당했고, 2년 전에는 은행에서 전세 계약금을 찾아 오다 잃어버렸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늘 무언가 실수해 야단맞은 기억들뿐이다. 세 사람은 현재 서울의 한 정신과 의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주의력 결핍, 산만함, 충동성, 과잉 행동 등이 주 증상인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소아·청소년들만의 병이 아니다.

성인들도 ADHD 진단을 받는다. 환자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추세. 미국의 ADHD 약 공급관리 업체 메드코 헬스 솔루션사는 2005년, 미국 20~64세 성인 중 150만 명 정도가 ADHD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00년, 이 회사가 발표한 성인 ADHD 수는 75만8000명이었다. 현재 국내 환자 통계는 전무한 편이다. 전문가들은 치료 받지 않고 있는 환자까지 포함하면 성인의 1~5%가 ADHD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홍성두 교수는“환자 수가 늘었다기보다는 예전보다 많이 발견되는 것”이라며“산만하고 충동적인 증상을 단순히 성격 탓으로만 여겼던 성인들이 ADHD를 의심하며 의사를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이들의 뇌는 일반인과 다르다.‘ 양전자방사단층촬영(PET scan)’을 하면 뇌의 포도당 대사 활성도가 일반인에 비해 떨어진다. 두뇌를 많이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주의, 계획, 실행, 논리적 사고 등을 담당하는 뇌 앞부분(Dosal Anterior Cortex)이 일반인보다 덜 활성화 돼 있다.

류한욱소아청소년클리닉 류 원장은“지능이 일반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갖고 있는 지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며“천재적인 지능을 갖고 있더라도 ADHD가 있으면 평범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인 ADHD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유전적인 요인이다. ADHD 집안을 연구한 결과 부모가 ADHD 일 때 자녀가 ADHD일 확률은 57%였다. 일란성 쌍둥이는 80%, 이란성 쌍둥이 30%, 형제 30%였다. 유전자를 연구한 결과 도파민 유전자에 변형이 있었는데, 이 변이 유전자가 부주의함, 실행능력 저하, 신기함 추구 등과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환경적인 요인이다. 산모가 흡연이나 음주를 할 경우 ADHD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고 임신 중 스트레스, 저체중 출산도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성인 ADHD는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면 단기간 내에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완치를 못하더라도 잘만 다스리면 축복이 될 수도 있다.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의 축복(The Gift of ADHD)’의 저자인 라라 호노스웹은“모범생들이 생물 시간에 광합성의 원리를 배우는 동안 ADHD 학생들은 창 밖을 쳐다보며 광합성이 흐린 날에도 가능할까 궁금해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들이 성인이 되면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를 내는 사업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할인 항공사의 선구자로 e티켓을 창안한‘제트블루’의 데이비드 닐먼은 자신의 ADHD를 최대 자산으로 여긴다.

‘ 주의력 결핍에서 구원 받다(Delivered From Distraction)’의 저자이자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정신과 교수인 에드워드 할로웰존과 존 레이티는“ADH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장점은 창의성, 통찰력, 왕성한 에너지다.

단점은 다양한 치료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교수들도 ADHD 환자였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충동적 행동 등으로 대인관계에 지속적으로 실패, 좌절감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는 약물, 상담, 생활 적응 훈련 등으로 이뤄진다.

약으로는 두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활성화시키는 성분이 처방된다. 충동 및 과잉행동을 조절하고 주의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복용 초기에 식욕 저하, 두통, 소화가 안 되는 느낌,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수일간 복용 후에도 이런 느낌이 계속 되면 약을 바꾸게 된다.

성인 ADHD 환자들은 대부분 스스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대인관계 실패로 인한 외로움, 피해의식, 열등감 등을 치유해야 한다. 가정, 직장 등에서의 적응훈련도 필요하다. 생활하면서 부딪히게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대처방법을 익혀야 한다.

성인 ADHD 체크 리스트
(12개 이상이면 전문가 진단 필요)

1. 일을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2.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준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3.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하지만 끝마치기 어렵다.
4.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5. 어떤 일에 과도하게 집중한다.
6. 정밀한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7. 조심성이 없어 실수를 많이 한다.
8.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9. 지속적인 정신력을 요하는 작업을 피하거나 싫어한다.
10.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말한다.
11.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12. 불필요하게 끝없이 걱정한다.
13.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14.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대답해버린다.
15. 차례를 기다릴 때 초조하고 답답하다.
16. 술, 담배, 게임, 쇼핑, 일, 음식 등에 깊이 빠져든다.
17.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발을 움직이거나 몸을 뒤튼다.
18.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19. 가끔 창조적이고 직관적이며 지적으로 우수해 보인다.
20. 가족 중 우울증, 조울증, 약물남용,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
21. 돈을 충동적으로 쓴다.
22. 과속, 음주운전을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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