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국장의 보고를 듣던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모든 정책을 일자리 창출과 연계해서 결정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 잘 반영하세요"
이날 간부회의에 참석한 국장급 관료는 "회의가 전례없이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며 "보고과정은 거의 일문일답 형태로 이어졌다"고 자리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 참패 뒤 다소 혼란스런 시간이 있었다"며 "이번 회의는 경제운용의 중심을 `서민경제 챙기기`로 가져가겠다는 뜻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재경부 간부회의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과제"..긴장감도
지난주 간부회의에서도 통상적인 순서에 따라 맨 처음 정책조정국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한 부총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과 중소기업, 음식점 등 자영업자 문제개선에 주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재경부 간부는 전했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정부의 경제정책운용이 서민경제 회복과 경기 활성화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말로는 일자리창출 등을 통한 양극화 해소 등을 외쳐왔지만, 실상은 부동산정책을 가장 우선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저소득층 자활지원 같은 정책은 부처간 협의부족이나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뒤로 밀렸다.
지난해 말 이후 생산 소비 등 지표는 분명히 좋아지고 있었지만 실질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해 지표와 체감경기간 온도차가 확연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8·31 부동산정책의 후속으로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3·30 대책을 내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5·31 선거 뒤 여당의 참패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당정은 경제운용방향을 서민경제 살리는 방향으로 틀기로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방향을 전환한다기 보다는 그동안 말로만 강조해왔던 정책들을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뜻이다.
당정 "복지위한 세율인상 없다" 못박아..실용정책 시동?
이같은 태도는 김근태 의장 체제를 갖추고 경제실용주의에 나선 여당내 기류에서 더욱 확연하게 느껴진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신임 의장은 지난 11일 취임 뒤 첫 기자회견에서 취임일성으로 `민생우선론'을 언급했다.
그는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란 옛 말과 `국민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근본(제민지산·制民之産)`이란 맹자의 경구를 교훈삼아 어려운 서민경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정책 수정과 관련해서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대차그룹 CEO출신인 이계안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 실물 경제 중시의지를 분명히 했다.
12일 열린 내년 예산논의 당정협의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여당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새로운 세목을 만들거나 세율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와 함께 유아보육 지원을 확대, 저소득층 학자금 신용대출 확대 등을 정부측에 요구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키로 했다.
한 부총리 역시 간부회의에서도 "규제개혁, 개방, 예산배분 등 모든 정책결정을 일자리창출과 연계해 결정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시행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지만 저소득층 소득파악 인프라 구축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동안 다소 지체돼 왔던 몇가지 자활빈곤정책의 본격화도 예상된다.
근로소득이 있는 저소득층이 저축하는 금액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정부와 민간기부금이 저축지원을 해주는 `자산형성지원사업(Individual Development Account)`이나 영세상인을 위한 재래시장 현대화 투자확대, 우리나라 고용의 80%이상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강화 등이 집중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개혁정책와 조화 과제..말로만 끝나지 말아야
그러나 일각에서는 서민경제 활성화를 지나치게 의식한 정책들이 개혁정책과 충돌을 빚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예컨대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 의료급여 구조조정, 저출산 고령화 대책, 중장기조세개혁 등은 국민부담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를 밀고나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정부와 여당은 서민경제 살리기와 미래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위한 개혁과제를 동시에 조화롭게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