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인터뷰)`손님은 왕이다` 오기현 감독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고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다"
첫 시나리오로 당당하게 충무로 입성한 `떠오르는 별`
  • 등록 2006-02-23 오후 3:39:07

    수정 2006-02-23 오후 3:54:31

[이데일리 전설리기자] "매년 오스카 시상식중에는 그 해에 세상을 떠난 인물들을 애도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스크린에 `명복을 빕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이제는 고인이 된 사람들의 영상이 순서대로 비춰집니다. 유명한 주인공이나 스타에게는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때때로 박수를 전혀 받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 여자 누구야?` `저 남자가 뭘 했는데?` `저 배우가 어디 나왔더라?` 화려한 스타와 주인공들만이 주목받는 세상. 그러나 스포트라이트가 비켜간 곳에는 수많은 조연과 엑스트라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비록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삶에서 치열했고 열정적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손님은 왕이다`로 장편 데뷔식을 치르는 신예 오기현 감독(사진)에게 영화에 대해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오 감독은 23일 edaily와의 인터뷰에서 `명계남에 대한 헌사`라는 세간의 영화 평에 대해 "배우 명계남이라는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켰는데 사람들이 별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그저 잘써지는 볼펜으로 글을 쓰듯이 감독으로서 연기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해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라며 "저널리즘의 속성과 맞물려 영화 외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동그랗고 까만 뿔테 안경에 긴 머리. 스타일이 범상치 않은 오 감독은 7년간의 유학에서 돌아와 첫 시나리오로 당당하게 충무로에 입성한 떠오르는 별이다. "목 뒤로 술술 넘어가는 스무디 같은 영화보다는 씹어서 즙을 내면 낼수록 맛을 알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은 진지하게 빛났다. 느와르풍 스릴러 `손님은 왕이다`는 이날 전국 185개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다음은 오 감독과의 일문일답.

-첫 장편 작품이다. 작품을 완성한 소감이 어떤가.
▲재미있게 찍었기 때문에 담담하다. 평균에 못미치는 제작비에 빡빡한 일정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행복하고 재미있었는데 배우나 카메라 뒤에서 열심히 땀흘린 스탭들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런건 아쉽다.

-마지막 반전에서 주제가 사회 문제로 귀결되는 느낌이 있다. 요즈음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 정책 변화의 배경으로 언급하는 `양극화 해소`처럼 보인다. 각본까지 썼는데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 `what to say`와 `how to show`다. 이 영화의 `what to say`는 임철우씨 장편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따왔다. `모든 인간은 별이다. 각자 자기 만큼의 크기와 밝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별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가 그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은 왜 거기서 그 일을 하고 있나`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적어도 자기 안에서는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학 시절 빈 아파트에서 혼자 오스카 시상식을 보고 있는데 스크린에 `명복을 빕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이제는 고인이 된 사람들의 영상이 순서대로 비춰졌다.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업을 기린 사람들이었다. 유명한 주인공이나 스타에게는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때때로 박수를 전혀 받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화려한 스타와 주인공들만이 주목받는 세상이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켜간 곳에는 수많은 조연과 엑스트라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웬지 스포트라이트를 비켜갔지만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97년 연극 `콘트라베이스`를 보고 자극받아 그 해 4월 미국 유학을 떠났고 `콘트라베이스`를 인연으로 명계남씨와 이 작품을 함께 하게 됐다고 들었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명계남씨를 위한 영화라는 느낌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명계남씨를 염두에 두고 썼나.
▲대학을 졸업하고 CF쪽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약간의 회의가 들었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이 길을 가야겠구나`하는. 그러던 어느날 연극 `콘트라베이스`를 보게 됐다. 당시 수많은 영화에 감초처럼 조연급으로 등장하던 명계남씨가 2시간30분 동안 혼자 모노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서 `배우 명계남`을 다시 보게 됐다.

연극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남몰래 사랑한 여인 `사라`의 이름을 부르기로 결심한다. 그 장면을 보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자`고 결심, 유학을 떠나게 됐다. 당시 명계남씨와는 배우와 팬의 관계였다. 이후 명계남씨가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들렀을 때 다시 만나게 됐고 그 인연으로 지금은 배우와 감독의 관계가 됐다.

-명계남씨가 자신에 대한 `비호감` 때문에 작품이 가진 새로운 열정이 전달되지 않을까, 흥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는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치 활동을 연기 활동과 따로 봐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실제 시사회장에 정동영 의장 등 정치인들이 참석해 이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이 많이 나왔던데. 이에 대한 생각은.
▲당황스러운 부분이다. 명계남이라는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켰는데 사람들이 별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 나는 그저 잘써지는 볼펜으로 글을 쓰듯이 감독으로서 연기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해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헌정 영화는 왜 안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하필 명계남이야?`라고 묻는다. 그럼 명계남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명계남은 한국 영화사에서 의미 있는 배우다. 저널리즘의 속성과 맞물려 영화 외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 작품에서 명계남씨와 대립구도를 이루면서 두번째로 스포트라이트를 배우는 첫 주연을 맡은 성지루씨다. 성지루씨의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평도 많다. 감독 입장에서 본 배우 성지루는 어떤가.
▲매우 성실한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이발사 역할을 맡았는데 감독인 나는 이발사 흉내만 내면 된다고 했는데도 실제로 한달동안 이발학원을 다니며 이발을 배웠다. 살을 빼야 한다니깐 `(설)경구만 빼는 거 아니지`하며 12kg을 뺐다. 완벽한 캐릭터 설정 등 자기 준비가 철저한 프로다.

나는 배우의 역량이나 창의성을 잘 뽑아서 영화에 반영할 수 있는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시나리오의 힘이 50%, 나머지 50%는 배우와 스탭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사실 이 영화는 배우들에게 빚진 영화다. 신인 감독에 신생 제작사, 그리고 저예산인 이 영화에 선뜻 출연을 결정을 내려준 배우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너무 열심히 잘해줬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 스탭들이 모두 젊어 젊은 분위기였다. 일을 즐기자는 분위기로 재미있게 했다. 한국 영화의 도제 시스템을 약간 벗어났으면 좋겠다 싶어 조명팀 막내와도 자유롭게 직접 커뮤니케이션했다. 그러나 도제 시스템의 장점도 있다. `초짜`인 내가 교과서에서 벗어난 앵글을 고집해도 경험있는 촬영감독과 조명감독 덕분에 현장 스탭들이 불안해 하지 않고 믿고 따라줬다.

-시사회 관객 반응은 어떤가. 오늘 개봉인데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시사회 반응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돈 벌 욕심으로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부담은 없지만 믿고 투자하고 맡겨준 시네마서비스에 손해가 안 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최근 블록버스터 `태풍`이 흥행에 실패하고 저예산 영화 `왕의 남자`가 성공하면서 관객들의 취향이 다양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왕의 남자`에 이준기가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까지 흥행할 수 있었을까. `태풍`도 손익분기점인 700만명에는 못미쳤지만 400만명이 들었다. 장동건의 힘이었다. 결국 스타의 힘인 것이다. 관객들이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영화를 소화해내야 한국 영화계에 발전이 있다.

-영화 제작비는. 손익분기점은.
▲영화 제작비는 19억원 정도이고 손익분기점은 100만명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 몇 개 있다. 다음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어느 영화 평론가가 `왜 결말에서 모든 주인공이 허구의 세계에서 내려와 현실의 땅에 발을 디디는데 유독 여자 주인공만 `팜므 파탈`이라는 허구의 세계에 가둬두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건 내가 여자를 잘 모르고 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자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목 뒤로 술술 넘어가는 스무디 같은 영화`보다는 `씹어서 즙을 내면 낼수록 맛을 알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

◇오기현 감독 약력
72년 서울 출생
96년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 졸업
99년 미주리 주립대 영화학과 졸업
04년 캘리포니아 주립대 영화학과 졸업
단편 `Communication Devices`(02) 시나리오·연출·편집
단편 `Charlie's Dark Angels`(01) 시나리오·연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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