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죽음을 부르는 정경유착

  • 등록 2003-08-04 오후 7:47:28

    수정 2003-08-04 오후 7:47:28

[edaily 문주용기자] 2년여만에 또다시 현대가의 상가 밥을 얻어먹는 기분은 참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2001년3월 청운동 고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장을 지켜봤는데, 2년만에 다시 현대아산병원에서 정몽헌 회장의 빈소를 보고 있다니… 자리한 사람들 저마다 혀를 차며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이런 불행을 일으켰을까. 산업부 문주용 기자가 전합니다.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한 4일 아침, 현대 계동사옥과 현대아산병원의 분위기는 침통함 그자체였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은 현대 임직원들은 서둘러 식장을 갖추고 조문객들을 맞이하려 했지만 황망한 표정은 감추질 못했습니다. 오전 일찍 한차례 소동이 빈소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짧은 옷을 입은 초로의 남자가 "그래, 대북사업 하지 말라고 얼마나 그랬어. XXX 임마, 회장님 잘 모시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라며 흐느낌 반, 호통 반의 울부짖음이 망자의 영정조차 아직 마련되지 않은 빈소를 휩쓸고 갔습니다. 이날 빈소에서는 지난 4년간 그토록 싸웠던 정씨 형제의 대립도 없었습니다. 한 가지에 나서고 저렇게 다투다가 끝내 영원한 이별로써 화해하다니…. 정씨 집안의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언제 갈등했냐는 듯 동생이 투신자살한 계동사옥에서부터 시신이 안치된 아산병원에까지 동생의 옆자리를 지키면서 회한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모인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외에 또 한가지, 공통된 생각을 가진듯 보였습니다. "정몽헌 회장의 사인", 그가 어떻게 죽었을까가 아니라 무엇이 그를 자살에 이르게 했을까에 대한 암묵적 "동의" 그것이었습니다. 대북 송금문제에 대한 특검의 수사, 새로 밝혀진 비자금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수사로 인한 스트레스. 이것이 그를 자살로 몬 이유는 아닐 것이라는데 대부분 동의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들은 "순진한 정 회장이 DJ정부한테 속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정 회장이 자살을 결심한데는 정권의 "배신"이 있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그들의 생각 일부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닙니다. 2000년 초였습니다.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의 길을 열고, 뱃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현대그룹의 한 CEO가 기자들을 모아놓고 온갖 성토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명예회장님이 북에 가서 합의하고 오면 모든 걸 다해준다고 해놓고, 남북경제협력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금강산 관광사업을 돕겠다고 해놓고, 어디 하나 해준게 있느냐. 유람선에 면세점을 열도록 해줬나, 카지노 허가를 내줬나. 내항허가를 내준다해놓고선 외항 허가는 또 뭐냐. 도대체 특별법으로 지원해준다고 해놓고 뭐하나 제대로 도와준게 있나. 차라리 금강산 유람선 사업권을 반납해버리고 싶다" 당시의 이런 얘기를 현대사람들중엔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빈소에서는 "DJ정권이 정 회장에게 진짜 사과해야 한다. 순진한 정 회장이 정권에 속아서…"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습니다. 비자금 150억원까지 만들어 주는등 현대가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는지는 특검결과에서 나옵니다. 또다른 임원은 "당시에 한번만 확실하게 도와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왕자의 난이 생긴 2000년3월이후 5월에 3부자 동반퇴진 선언이 나오고, 6월부터 현대건설 유동성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현대그룹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동안, "딱 한번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일심해서" 현대에 도움을 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이런 정서이고 보면 정 회장의 사인은 정말 근본적인 사인을 좇는데 맞춰져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공통된 생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런 방식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권과 거래하는 식의 사업방식은 아무리 고상한 명분조차도 정당화되지 못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정권이 "응당" 줘야하는 것을 받지 못해 기업이 망하고, 기업인이 자살했다는 식의 생각은 구시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가 순전히 회사의 이익을 노리고 대북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이면에는 이렇게 과거 현대가 성장해왔던 전형적인 방식인, 정경유착의 고질적 버릇이 그대로 녹아있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독점적 이익을 노리고 "올 인"하는 도박같은 사업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 회장의 죽음이 이런 "올 인"방식이 통하던 시대의 종언이기를 기대합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다시 뭉친 BTS
  • 형!!!
  • 착륙 중 '펑'
  • 꽃 같은 안무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