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정재영이 연기한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다. 예전의 역사소설과 TV사극 등에서는 조선 수군과 백성에게 횡포를 부리고 전투에는 소극적이면서 공적만 탐을 내는 악인으로 묘사됐다. 영화 ‘노량’에서는 뇌물을 받고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려다가 마음을 바꿔 이순신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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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에 감복한 뒤 그의 공적을 명나라 황제에게 보고해 깃발, 도장, 병풍 등 8가지 하사품을 내리도록 하는가 하면 그가 전사하자 통곡하며 추모시를 짓기도 했다.
한국의 진조 후손들은 진린을 시조로 모시고 그의 고향을 따서 ‘광동 진씨’라고 부른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이 최대 집성촌이다. 전국의 씨족 3천여 명 가운데 56가구가 산다. 중국의 고향을 그리는 뜻에서 서향으로 지은 집이 많다. 진린을 초상을 모시고 아들, 손자, 증손자(진석문)까지 4대 선조의 제사를 받드는 사당 황조별묘(皇朝別廟)도 세워졌다.
2014년 방한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서울대에서 “명나라 등자룡과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함께 전사했으며, 명나라 진린 장군의 후손은 오늘까지도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강연했다. 주한 중국대사 추궈홍과 싱하이밍도 각각 2015년과 2020년 해남을 찾았다.
광동 진씨 종친회는 이순신 후손인 덕수 이씨 종친회와 교류하는 한편 1994년 진린의 고향 광둥성(廣東省) 웡위안현(翁源縣)을 찾아 후손들과 만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양국을 교환 방문해 우의를 다지고 있다.
한동안 긴밀했던 한중관계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계기로 냉랭해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자 더욱 얼어붙은 느낌이다. 이웃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사라도 할 수 있지만 나라는 옮겨갈 수도 없다. 중국은 좋든 싫든 우리의 가장 큰 교역국이고, 그곳에 사는 우리 동포나 이곳에 사는 중국인도 많다.
체제와 이념 차이 때문에 경쟁과 갈등은 불가피하더라도 민간 차원에서는 교류와 협력에 나서야 한다. 배타적인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정도를 걸으며 호감을 사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