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그때 그 기업, 엔론

  • 등록 2003-12-08 오후 5:09:40

    수정 2003-12-08 오후 5:09:40

[edaily 김윤경기자] 엔론을 기억하십니까.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엔론이 회계 스캔들을 안고 파산한 지 지난 2일로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엔론 이후 줄줄이 기업들의 회계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닷컴버블의 붕괴, 9.11 테러로 침체 일로를 걷던 미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엔론"과 그 충격은 다소 잊혀진 듯 합니다. 그러나 과연 부패 덩어리는 다 걷어낸 것인지, 미국 경제는 다시 신뢰성을 회복하고 있는 것인지 국제부 김윤경 기자는 의문스럽다고 합니다. 요즘 상한가인 영화 <올드보이> 보셨습니까. 청년 실업가 이우진(유지태 분)에게 이유를 모른채 15년간 감금당한 오대수(최민식 분)가 탈출 후 복수를 감행하는 것이 영화의 큰 줄거립니다. 오대수는 자신이 왜 갇혔을까 처음엔 분노했지만 곧 자신이 갇힌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잘못들을 낱낱이 적어내려 갑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악행의 자서전"이라고 이름붙입니다. "오늘도 대충 수습하며" 살아가던, 그러니까 별 무리없이 무난히 살아가던 그도 자신의 과거를 복습하다보니 잘못했던 일,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나 봅니다. 그가 써내려간 "악행의 자서전"은 노트 뭉텅이가 되더군요. 미국 기업의 신뢰도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던 엔론, 물론 기억하실겁니다. 한 때 신경제(New Economy)의 성공기업으로 떠올랐던 이 기업, 그야말로 "악행의 자서전"을 몇 권 너끈히 써낼 수 있을만한 기업으로 밝혀졌습니다. 엔론의 막대한 자산이 사실은 거의 부채였다니 믿기 어려웠지만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회계장부에 분칠을 해댔던 것이죠. 정치권에 검은 돈도 대 왔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엔론이 20년 가까이 순익을 늘리고 손실을 감춰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월드컴과 타이코인터내셔널, 글로벌크로싱 등 다른 대기업들의 회계부정도 줄줄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주식회사 미국"의 신뢰성은 크게 흠집났습니다. 엔론은 지난 7월에야 자회사 매각과 사업재편 등의 내용을 담은 자구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자구안 이행의 일환으로 본사 건물이 매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휴스턴 다운타운에 위치한 50층짜리 본사 건물이 5550만달러에 팔렸습니다. 건물이 팔리기 전 이 건물 벽에 걸려있던 각종 현대 미술작품이나 사진들은 이미 경매로 팔린지 오래랍니다. 건물 일부는 여전히 임대해서 쓰기로 했다지만 한 때 이 건물에 7500명의 직원이 들끓었던 이 건물에 지금은 1200명 남짓 남아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본사 건물을 팔고 몸집을 줄이고 했다고 해서 엔론에 동정표를 던질 수는 없습니다. 엔론의 "악행"들을 더 들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엔론은 에너지 중개 회사이자 에너지 관련 파생상품을 다루는 선물 전문회사이기도 합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엔론이 헤지펀드에 가까운 회사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파생상품을 취급한다고 하는 것은 정부의 규제가 회사의 생명을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선물 시장 보두 정부의 통제가 강한 부문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인 92년 엔론의 에너지 거래를 가능하게 해 줬습니다. 또 선물거래위원회도 에너지 파생상품 규제를 풀어줬습니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규제완화"를 통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엔론은 문어발식 확장으로 부실 기업의 몸집만 키웠고 속으로 곪는 악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영진들은 자기 것을 챙겼지만(이미 엔론 몰락 수개월전 경영진은 주식을 팔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401K에 따라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자신의 자산을 쏟아부은 직원들은 엔론의 몰락으로 주가가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경영진 일부는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가운데에서도 막대한 보너스를 챙겼다고 합니다. 규제당국은 이후 특별 손익을 임의로 제거하는 회계인 이른바 "프로포마(pro forma) 회계를 제한하는 등 기업들의 회계준칙을 강화하고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사바네스-옥슬리"법을 통과시키면서 신뢰성 회복작업에 나섰지만 그야말로 사후 약방문입니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들, 그리고 겉으로 번지르르한 기업에 투자했던 주주들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지고 있는 걸까요. 엔론 경영진에 대한 민형사 소추는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아직 다 결론지어지지 않은 상탭니다. 케네스 레이 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민형사 소송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회계 담당자가 얼마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징역형을 받은 이의 상사인 앤드류 파스토 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사기와 돈세탁 등의 무려 109개 혐의로 기소돼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형은 살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엔론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발 스캔들은 끊일 줄 모릅니다. 스캔들의 중심은 기업에서 금융시장으로 옮겨갔습니다. 월가 투자은행들이 이해관계에 얽힌 보고서 작성으로 투자자들을 오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가 하면 뮤추얼펀드들은 불법과 합법을 오가며 부적절한 거래로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엔 미국 연방수사국(FBI)가 유명 자금중개업체에서 근무했던 48명의 외환거래 업무 종사자들을 외환 사기 혐의로 잡아들였습니다. 이럴 때일 수록 개개인의 윤리 의식은 물론 책임자들의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기업 경영인이나 투자자들의 소중한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조용히 앉아 자신이 잘못했던 것은 없는 지, "악행의 자서전"까진 쓰지 않더라도 자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썩은 사과 하나가 상자 전체 사과를 썩게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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