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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5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왕이 걷던 길, 광릉숲길이 열린다.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의 무덤인 광릉 주변은 1468년 능림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던 그야말로 ‘왕의 숲’이다. 이 곳은 조선시대는 능림 지정 이후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됐고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현재까지 줄곳 임업 시험림 역할을 해온데다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도 지정됐다.
이런 고귀함을 간직한 광릉숲 일대가 오는 25일부터 누구나 걸어서 지날 수 있는 둘레길, ‘광릉숲길’을 내어줄 준비를 마쳤다. 국립수목원이 위치한 광릉숲을 관통해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와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를 연결하는 광릉수목원로의 3㎞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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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길’ 사람이 숲과 하나될 수 있는 자연의 선물
이 길을 직접 걸어 본 사람이라면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숲의 고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광릉숲길의 남양주시 쪽 입구인 봉선사부터 국립수목원까지 이어지는 3㎞ 구간을 왕복하면 숲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막연한 감동이 전해진다.
약 2m 폭의 둘레길은 목재 데크를 이어 붙여 숲이 가진 성격을 거스르지 않았다. 또 숲과 둘레길을 차단하는 철조망과 담장도 최소화 해 이곳이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자연과 조화를 이뤘다.
국립수목원을 돌아 남쪽의 봉선사로 향하는 길에서는 또 다른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뭇잎 사이를 뚫고 숲길을 비추는 봄의 햇볕 줄기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한 광경을 선사한다.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의정부 총지사의 주지인 동진 스님은 “이 길이야 말로 자연과 사람이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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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겐 ‘소통’의 공간, 아이들에겐 ‘자연학습장’
이미 둘레길 개통 소식을 들은 주변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가 됐다. 삼삼오오 광릉숲을 찾은 주민들은 숲길을 걸으며 일상 속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5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만들어준 숲 속에서 힐링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의정부시에 사는 김관영(67)씨 부부와 남양주시의 오철호(66)씨 부부는 광릉숲 한 가운데 자리잡은 국립수목원 언저리 둘레길을 걸으며 일상을 공유했다. 출가한 딸의 시집살이 이야기와 손주들의 재롱을 스마트폰으로 함께 보고, 새로 산 트래킹 전용 신발의 편안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오철호 씨는 “광릉숲을 통과하는 둘레길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부부와 국립수목원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숲길을 걷다보니 일상의 스트레스가 전부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가끔 자동차로 광릉수목원길을 지나긴 했는데 막상 걸어서 광릉숲을 통과하고 나니 왜 이제서야 이런 둘레길이 만들어진건지 이해가 안될 정도”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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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공식 개통…산림다양성 보전과 지역발전 공존 ‘일석이조’
국립수목원은 지난 2017년 공사를 시작해 만 2년이 걸려 오는 25일 광릉숲길을 개통한다.
‘광릉숲 정원벨트 조성사업’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사업은 광릉숲이 간직한 산림다양성을 보전하면서 지역발전이 공존하는 신사업을 창출한다는 목적으로 추진됐다.
경기도와 포천시가 추진하는 K-디자인빌리지와 남양주시의 다산길을 연결해 국립수목원 광릉숲과 포천, 남양주지역 문화·휴양 시설을 연계한 ‘생태’와 ‘문화’를 주제로 담았다.
남양주시 부평리의 맞이길 정원을 시작으로 포천시 직동리까지 이어지는 3㎞ 구간은 전나무복원숲과 사계찬미, 나물정원, 산새소리정원, 고사리정원, 광릉가는길, 물의정원, 단풍숲과 놀이터, 작은수목원 등 10가지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광릉숲 정원벨트는 숲이 갖는 고유한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숲 속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한 자연친화적이고 안전한 숲 길을 조성하는데 목적을 둔 만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