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관과 남성 침묵 속에서 약물범죄 카르텔 자라났다"

내달 2일 `남성약물 카르텔 규탄시위` 주최측 인터뷰
"약물 사고파는 이들뿐 아니라 방관해온 정부도 공범"
지난해 불법촬영 규탄 시위에 이어 혜화역에서 열려
"혜화역이 여성인권 말하는 장소로 거듭났으면"
  • 등록 2019-02-28 오전 11:55:46

    수정 2019-02-28 오후 12:12:00

(사진=‘남성 약물 카르텔 규탄 시위’ 트위터)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물뽕(GHB) 등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논란이지만 여전히 쉽게 약물을 구할 수 있다. 그렇게 판매된 약물이 다 어디에 쓰였겠나. 약물 범죄는 판매자와 구매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가담하는 조직적인 카르텔이다.”

클럽 버닝썬 사태로 약물을 이용한 여성 대상 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다음 달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는 ‘남성 약물 카르텔 규탄 시위’가 열린다. 같은 이름의 다음 카페는 지난 12일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집회를 예고하고 “신종 마약을 이용한 여성대상 범죄를 비판하겠다”는 시위 취지를 밝혔다.

“약물 카르텔은 일종의 산업…클럽 아니어도 피해자 될 수 있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시위 주최 측은 “남성 약물 카르텔은 일종의 산업처럼 조직화돼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순히 약물을 파고 사는 이들뿐 아니라 문제를 방관한 정부와 카르텔의 존재를 알면서도 침묵을 지켜온 남성 문화를 함께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2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팀장과 스태프를 모집했다. 서로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익명 채팅방 등을 통해 회의를 진행한다. 원래 지인 관계였던 3명을 제외하고는 서로 알지 못한다. 현재 50여 명이 함께 준비하고 있다.

시위 명칭인 남성 약물 카르텔은 주최 측이 새롭게 만든 용어는 아니다. 버닝썬 사건 초기 약물 범죄 정황이 나오면서부터 SNS 상에는 남성약물 카르텔 해시태그가 퍼졌다. 주최 측은 “이 말이 현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카르텔(담합)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약물 범죄는 약물을 팔거나 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유통업자 등이 조직적으로 엮인 결과”라며 “앞에 남성이 붙은 건 약물 범죄의 가해 성별이 주로 남성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약물 범죄를 클럽 내에서 발생하는 일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약물 범죄 과정에서 생산된 불법촬영물이 웹하드에 유통되고 있는데 이를 소비하는 남성들 역시 카르텔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직장 동료나 여자친구도 약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클럽을 이용하지 않는 여성도 얼마든지 약물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약류 등 금지품목 안내문구가 세워져있는 클럽 ‘버닝썬’ 모습. (사진=연합뉴스)


“침묵의 카르텔·피해자 탓…약물범죄 존재조차 알기 어려워”

이들은 시위를 통해 카르텔을 방관해 온 정부를 비판하고 관련 대책을 촉구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정부가 ‘한국은 마약 청정국가’라는 이미지를 챙기기 위해 약물 범죄를 지금까지 외면해왔다”며 “유통 과정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방관해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약물 범죄는 과거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방관과 침묵 속에서 많은 이들은 카르텔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며 “이번 시위를 통해 많은 이들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남성 약물 카르텔의 밑그림을 인식하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시위 준비 과정에서도 GHB의 위험성 등을 알리는 홍보 활동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궁극적으로는 약물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남성들에게는 약물 범죄도 범죄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은 “성인용품 사이트 등에서 광고 배너로 약물 홍보 글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범죄를 위한 약물이라는 개념은 없다. ‘오늘 한 번’하는 식으로 가볍게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클럽에서 약을 탄 술을 먹고 피해를 본 여성들에게 ‘클럽에 가서·모르는 남성이 주는 술을 마셔서 피해를 입었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도 약물 범죄가 지금까지 공론화되는 것을 가로막은 걸림돌”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피해자 탓은 전형적인 2차 가해이며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남성 약물 카르텔 규탄 시위’ 주최 측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해영 기자)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위가 됐으면”

한편 이번 시위는 혜화역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주목받았다. 혜화역은 지난해 불법촬영과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던 장소다. 일명 ‘혜화역 시위’로 알려진 이 시위는 6번 중 4번이 혜화역에서 열렸다.

이들은 “약물 범죄 역시 여성 대상의 범죄”라며 “여성인권을 위한 시위가 열렸던 혜화역이라는 장소를 여성 시위의 대표적인 장소로 만들자는 차원에서 장소를 혜화역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준비 단계에서 의견을 받을 때 같은 이유로 혜화역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사람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제2의 혜화역 시위라는 표현에 대해 “이전 시위(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와 저희 시위의 의제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규탄한다는 점에서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앞서 혜화역 시위를 보며 용기를 얻어 여성인권을 말하게 된 이들이 많은데 약물범죄 카르텔 규탄 시위도 여성들에게 그런 용기를 주는 시위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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