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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이 1년만에 61조원이 넘게 급증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옥죄면서 은행들이 기업대출 시장에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과도한 금리 경쟁으로 마진보다는 당장의 영업 확대에 치우쳐 비우량 기업에도 대출을 실행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출혈경쟁이 지속될 경우 기업 대출이 부실화하며 자칫 은행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756조331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694조8990억원)보다 61조4320억원 증가한 수치로, 9개월 연속 증가세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대출 잔액은 695조830억원에서 682조3294억원으로 12조7536억원 줄었다. 지난해 9월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비중은 50대 50에서 매달 서서히 격차를 벌리더니 1년 뒤인 지난달 말에는 52대 48로 나타났다.
이는 은행권이 올해부터 기업대출 영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 시기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회사채나 주식 등으로 직접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자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과 맞물렸다. 여기에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우려하면서 모니터링이 한층 강화되자 기업대출 경쟁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근 기업대출 점유율 4위까지 내려앉은 우리은행은 오는 2027년 기업대출 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며 기업금융 경쟁 구도에 뛰어들었다. 2027년까지 순증 규모 30조원을 달성해 현재 50대 50인 기업과 가계대출 비율을 2026년 말까지 60대 40으로 재편한다는 구체적 목표까지 세웠다.
기업부채는 이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현안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정기국회 및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간한 ‘한눈에 보는 재정·경제 주요 이슈’ 보고서를 통해 최근 기업부채 현황을 주요 이슈 중 하나로 꼽았다. 보고서는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증한 기업대출은 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기가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연체율이 추가로 더 올라간다면 늘어난 기업대출이 은행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리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게 되면 특히 중소기업 연체율은 더욱 심화할 개연성이 있어 은행도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쓸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질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정부에서는 기업대출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제를 하고 있진 않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