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년 만에 영화 ‘3일의 휴가’로 돌아온 육상효 감독의 이야기다. ‘3일의 휴가’는 육상효 감독에게 창작자로서도, 개인으로서도 그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육상효 감독은 바로 전작인 ‘나의 특별한 형제’(2019)부터 ‘방가? 방가!’, ‘달마야, 서울가자’ 등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로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왔다. 지금까지 주로 자신이 직접 쓴 각본으로 연출까지 한 육 감독이 타인의 시나리오에 마음이 움직여 메가폰을 잡은 건 ‘3일의 휴가’가 처음이다. 시나리오 속 주인공 모녀의 이야기에 많은 눈물을 흘리며 추운 겨울 강원도 정선에서 ‘3일의 휴가’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 개봉을 앞두고 모친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개인적 아픔을 겪은 그는 극 중 진주의 마음에 더욱 공감하며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다.
육상효 감독은 영화 ‘3일의 휴가’ 개봉을 기념해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6일 개봉한 ‘3일의 휴가’는 하늘에서 휴가 온 엄마 ‘복자’(김해숙 분)와 엄마의 레시피로 백반집을 운영하는 딸 진주(신민아 분)의 힐링 판타지를 그린 영화다. ‘국민엄마’란 수식어를 보유한 명품 배우 김해숙과 데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러블리’의 대명사인 신민아가 처음 극 중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육상효 감독은 ‘3일의 휴가’ 개봉을 앞두고 지난 7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아직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슬픔을 극복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라며 “자꾸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나 금기어가 됐을 정도다. 그렇게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도 개봉을 위해 영화를 정리하고 사운드를 만졌다. 내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어머님의 집을 청소하고 유품을 정리하며 ‘3일의 휴가’ 속 진주의 마음에 더욱 공감하게 됐다고도 전했다. 그는 “어머님이 쓰시던 스카프를 버리지 못하고 제 방 스탠드에 묶어놨다. 책상에 앉아있다가 고개를 돌리는데 엄마 냄새가 확 나는 거다”라며 “진주가 엄마가 계셨던 공간에 다시 온 이유는 엄마 냄새가 그리웠어서가 아닐까. 엄마의 이불을 덮고 자고, 엄마가 사용했던 주방기구로 요리를 해먹고. 그렇게 3년을 지내며 그리워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추억하며 인터뷰 중간 눈시울을 살짝 붉히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자신도 모르게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연출을 결심했다고. 그는 “딸과 엄마의 흔한 이야기일줄 알았는데, 이 시나리오의 무엇이 날 이렇게 자극해서 울게 하는가. 나 역시 연출자이기 전에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우리 부모님의 쇠약해져가는 모습에 자극이된 것 같다”며 “그 당시 저희 부모님이 살아계셨지만 쇠약해지시는 걸 느끼던 때였다. 제게 딸 아이가 있는데 시나리오의 감정에 내가 딸아이를 보는 감정이 개입돼 특히 더 울었다. 우리 딸도 나중에 날 그리워하겠구나 싶더라”고 회상했다.
남성의 입장에서 극 중 모녀 관계의 연출에 주안점을 둔 부분에 대해선 “작가님이 모녀 관계를 딸의 관점에서 썼다면, 나는 아들로서 좀 더 보편적 시각에서 부모와 자식을 대표하는 관계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며 “부모님의 생각과 자식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님의 말을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부모님들의 의도는 늘 자식을 염두에 두고 가족을 위한 행동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걸 나중에서야 자식들이 깨닫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사람이 쓴 각본을 내 방식대로 소화하는 작업은 이 사람의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어렵고 어색했다. 다행히 유영아 작가와 많은 회의와 대화로 이해가 해결됐다”며 “대사를 줄이고 시각적인 면을 강조했다. 기억의 이미지를 통해 그리움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도 부연했다.
앞서 김해숙과 신민아는 시사회, 인터뷰 등을 통해 극 중 모녀이지만 실제로도 모녀처럼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고 털어놔 눈길을 끈 바 있다. 육상효 감독 역시 두 사람의 결이 비슷하다며 “배우로서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 각자가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가짐 등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카메라 속에서도 두 분이 실제 모녀의 느낌이 났다. 촬영이 끝난 후 두 사람이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서로가 닮아보였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본 어린 아이들도 진주의 감정에 공감해 눈물을 흘렸다고. 육 감독은 “우리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인데 이 영화를 보고 엄청 울더라. 그 어린 애가 뭘 알고 그렇게 운 건지는 모르겠다”며 “친구들이 시사회 때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영화를 봤는데 그 아이들도 울었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가 동화같은 걸까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난 작품 때부터 느낀 건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려 영화를 시작했구나 생각이 든다”며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 요즘 잘되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님 등 대단한 분들이 많으시다. 저는 그분들이 만드는 영화보단 이런 가족 이야기를 하려 영화를 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휴먼 코미디, 휴먼 멜로 등 사람냄새 나는 작품들을 하게 될 것 같다. 그걸로 누군가가 위로 받는다면, 그것만으로 이 길을 걸어온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소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