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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연(31)은 얼마 전 동료 카리 웹(호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2018년을 부상과 싸우고 있는 최나연에게 웹은 따뜻한 위로와 함께 응원의 말을 건넸다. 경험이 많은 웹의 격려였기에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2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머물며 훈련 중인 최나연은 이데일리과 통화에서 “요즘 이런 응원과 격려를 많이 받고 있다”면서 “고맙고 더 열심히 해서 빨리 투어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최나연의 일과는 조금씩 투어 복귀에 맞춰가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잘 짜놓은 계획표대로 일어나고 먹고 훈련하는 방식은 아니다. 원래 그에게 대충이란 없었다. 골프선수로 지난 20년 동안 늘 반복적으로 살아왔던 그는 예전의 최나연이 아닌 새로운 최나연으로 허물을 벗고 있다.
“나 스스로 옥죄고 힘들게 했던 부분이 많았다. 늘 같은 시간에 알람을 맞춰 놓고, 꼭 그 시간에 일어나야 했고, 밥은 20분 안에 먹어야 하고 한번 골프채를 잡으면 7~8시간씩 스윙을 하는 생활을 10년도 넘게 해왔다”면서 “지금까지는 ‘그런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처음으로 계획 없이 지내고 있고 이젠 그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게 최나연이 직접 밝힌 변화다.
일과를 공개하는 최나연의 목소리에선 생기가 느껴졌다. 조금씩 또 다른 방식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그는 “새롭게 살다 보니 또 그런 방식에 적응되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나연은 요즘은 아무 것도 정해놓지 않고 상황에 따라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밥을 먹고 싶을 때 먹고 훈련하고 싶을 때 훈련한다. 익숙하지 않은 생활이지만, 긴 공백을 거치면서 그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최나연은 지난 4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휴젤 LA오픈을 기권한 뒤 메디컬 익스텐션(병가)을 제출하고 투어 활동을 중단했다. 몸의 한쪽으로만 스윙하는 골프선수들은 허리 부상을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나연도 피해가지 못했다. 몇 년 동안 괴롭혀온 허리 부상이 결국 크게 터지면서 최나연의 손에서 골프채를 내려놓게 했다. 그는 5월부터 석 달이 넘도록 골프채를 잡지 않고 재활에만 전념해왔다. 지금은 정상적인 스윙을 할 수 있는 정도로 회복됐지만, 아직도 불안함을 떨치지는 못했다. 누구도 몸 상태를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만큼 다시 재발할 우려가 있어 여전히 조심스럽다.
최나연은 잠시 골프채를 내려놓은 동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병가를 제출하고 사흘 뒤 무작정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을 정리했다. 최나연은 “여행이 끝날 무렵 한 민박집에서 만난 여행자들을 만나 각자 살아온 인생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며 “서로 다르게 살아온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됐고 좋은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필드를 떠나 있는 동안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도 다시 알게 됐다. 동료의 우승 소식이나 경기하는 장면을 볼 때는 골프선수로서의 근성이 발동하기도 했다. 최나연은 “집에 있다보니 TV로 동료의 경기를 더 자주 보게 되더라”며 “그런 모습을 보면 빨리 투어에 복귀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또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상상도 하게 됐다. 조금씩 필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천생 프로골퍼임을 숨기지 못했다.
최나연은 자신의 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시드가 2년 더 남아 있지만, 만약 그 시기 동안 뒤로 더 밀려나면 시드전을 가야 한다”며 “그런 상황이 오면 미련 없이 내려놓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려고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투어에서 더 오랫동안 선수로 활동하고 싶다”고 간절한 마음을 꺼내 보였다.
최나연은 내년 3월 투어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 조금씩 정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인 최나연이 꺼내 든 카드는 초심이다. 내년 1월 초부터 동계훈련에 들어갈 최나연은 오랜 스승인 로빈 사임스(아일랜드)와 함께 7주 동안의 강도 높은 훈련 일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어린 학생들과 함께하며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최나연은 “코치가 ‘학생들과 똑같이 할 자신이 있으면 합류하라’고 했고, 나 역시 다시 초심을 느껴보고 싶어 훈련에 함께하기로 결심했다”면서 “내년 3월 복귀 때까지 차근차근 준비해서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1987년 10월28일생
2004년 KLPGA ADT캡스인비테이셔널 우승(아마추어)
2005년 KLPGA 투어 데뷔 (국내 프로 통산 3승)
2008년 LPGA 투어 조건부 시드로 데뷔
2009년 LPGA 삼성월드 챔피언십 우승
2010년 LPGA 제이미파 오웬스 코닝 클래식, 하나은행 챔피언십
2010년 LPGA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 상금왕 (2관왕)
2011년 LPGA 사임다비 말레이시아
2012년 LPGA US여자오픈, CME 타이틀 홀더스
2015년 LPGA 코츠챔피언십, 아칸소 챔피언십 (통산 10승)
LPGA 투어 통산 상금 1072만9305달러(약 121억5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