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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부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20경기서 단 하나도 나오지 않은 홈런. 3할6푼4리에 머물고 있는 장타율과 20경기서 낸 8개의 타점은 그의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갸우뚱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5월19일까지는 좀 더했다. 5월 박용택의 타율은 무려 4할2푼2리나 됐다. 홈런도 기어코 하나 쳤고, 장타율은 4할8푼9리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끝 없어 보이던 팀 성적 추락을 그의 고개를 더욱 떨구게 했다.
당시 박용택은 “요즘 타율이 장난 아니더라”는 농담에도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네요”라는 한숨으로 답을 대신하곤 했다. 안타는 제법 치고 있지만 홈런과 장타의 비율을 높여 보다 많은 타점을 올려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크다는 뜻이었다. 찬스를 이어가주는 역할 정도로는 부족했던 탓이다. 뒷 타순의 해결 능력은 ‘당시만 해도’ 언제나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병규 이진영의 부상과 정성훈의 부진 등, LG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홀로 타선의 중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매년 반복 되던 ‘부담’시리즈가 또 한번 재연되는 듯 했다.
다른 팀이 9번 공격에서 만들 수 있는 점수를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5이닝 안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LG의 아픈 현실이었다. 물론 그 책임은 이름값과 실력을 지닌 주축 타자들의 몫이었다.
야구는 멘털 게임이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성.패의 반 이상을 좌우한다. 타석에서는 최대한 단순해야 한다는 정설도 있다. ‘여기서 못쳐서 찬스가 뒤로 밀리면 해결 확률이 떨어진다’는 두려움이 찬스에서 LG의 중심 타자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위 타순에 배치 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숱한 찬스가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팀에 또 짐이 되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LG는 김재박 감독 시절, 경기 전 훈련에서 희생 플라이를 치는 훈련을 별도로 하기도 했다. 평생 야구만 한 선수들에게 외야로 타구를 보내는 훈련을 지시한다는 건 LG가 느낀 답답함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 최근 박용택의 얼굴에선 자못 여유가 느껴진다. 그의 성적과 표정이 반비례하고 있다.
6월 이후 타율은 고작 2할5푼이다. 출루율도 3할5푼에 불과하다. 타점 내는 비율이 다소 늘기는 했지만 수치상 박용택의 6월은 고민의 결정체여야 한다. 끝 없이 자신의 문제점을 파고드는 그의 성격상 더욱 그랬다.
5월21일 이후 LG는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최근 10경기 연속 위닝시리즈라는 기분 좋은 기록 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정말 많은 선수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문선재 김용의,현재윤, 손주인 등 LG에 새로운 힘을 보태고 있는 선수들의 공이 크다. 특히 문선재와 김용의는 실로 오랜만에 LG 하위 타순에 3할 타자를 배치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줬다. 이들이 상위 타순에 배치되면 심지어 이진영까지 7번으로 밀리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김기태 LG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는 포석이다. LG 하위 타선이 이제는 더 이상 쉽게 아웃 카운트를 헌납하지 않는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일단 진영이가 잘 받아줘서 고맙다. 이진영이 7번에 있다면 상대도 생각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잘 해주고 있는 덕”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한 달을 보낸 박용택의 진심 가득 담긴 여유있는 미소. 달라진 LG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잘 생긴’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