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겨울, 한국 프로야구가 달라졌다. 각종 언론은 물론이고 게시판까지 연일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9구단의 주인을 자청하고 나선 이후 생긴 변화다.
‘개 업빨’이란 말이 있다. 흔히 음식점을 처음 문 열때 쓴다. 음식의 질을 떠나 일단 개업을 하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손님이 모여든다는 의미다. 진짜 흥행 여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검증된다. 문 열자마자 손님이 몰려든다도 반드시 대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엔씨소프트도 일단 ‘개업빨’을 누리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하다. 쌍방울 이후 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프로야구가 외적 성장을 꾀할 수 있게 됐다는 호재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엔씨소프트 열풍을 단순히 호기심의 틀 안에 가둬둘 수는 없을 듯 하다. 엔씨소프트와 그들의 홈구장이 될 창원시가 만들어 내고 있는 바람은 새롭고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왜 9구단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크게 두 가지 테두리로 나눌 수 있을 듯 하다.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겸양과 인정이다.
9 구단은 시작부터 남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우선 연고지인 창원시. 창원시는 기존의 마산 구장 개.보수를 넘어 새 구장 건설도 약속했다. 1200억원 이상의 재원도 스스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바다가 보이는 구장 등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이는 소식들을 연일 전해왔다.
창원이 상대적으로 든든한 재정을 가진 지자체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규모 특혜가 불가피한 돔구장 등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현실적은 대안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여기에 창단 기업에 임대료를 최소화 한 장기 임대 및 운영권 지원 등 청사진도 제시했다. 야구단을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동반자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진심으로 9구단 유치를 원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엔씨소프트도 효과적으로 발을 맞추고 있다. 야구장 부지에 호텔 건설 등 비전을 함께했다.
또 김택진 대표의 창단 취지는 듣는 이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겼다. “우리 회사는 그동안 청소년들을 방으로만 끌어들였다. 이제 야구장으로 그들을 불러내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도록 돕겠다.”
간결하지만 진정성 있는 말이었다.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를 통해 기업의 사회 공헌을 추구하겠다는 구단주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네 야구단 구단주에게서 이처럼 진심이 뚝뚝 베어나오는 간절한 소망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제 기업에게 야구가 어쩔 수 없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절실한 하나의 목표일 수 있음을 그들은 보여줬다.
겸 양과 인정의 태도도 신선했다. 엔씨소프트는 9구단 우선 협상자로 선정된 뒤 “창단과 관련해 각계 각층에서 보여 주신 절대적인 성원을 결코 잊지 않겠다. 프로야구를 현 위치 까지 발전시키고 끌어오신 기존 구단들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고 창원은 물론 전체 프로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롯데 구단의 경우 엔씨소프트의 기업 규모를 들먹이며 정면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업계 최고를 다투는 기업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전 사례에 비춰봤을 때 이 정도 텃세는 창단의사를 접게 만들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어렵사리 프로야구를 지켜 온 선배 구단들에게 존경의 뜻을 보내며 예를 다했다. 롯데를 향해서는 “진심어린 조언이라 생각하며 감사한다”고 까지 했다.
그 동안 프로야구는 이기고 지는, 치열한 전쟁터로만 여겨졌다. 서로를 밟고 일어서려는 경쟁만이 너무 부각돼 왔다. 하지만 엔씨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남다른 시도를 통해 더 높게 날겠다는 욕심은 감춘 채 생동감 있는 막내의 모습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엔씨소프트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열정과 태도라면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란 믿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엔씨소프트와 창원시가 만들어낸 열풍은 기존 8개 구단과 지자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하면 팬과 시민들의 환영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