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시간다. 단 5~10분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선수들은 모든 훈련이 끝나면 개개인의 방법으로 게임을 준비한다. 자유로운 시간이다. 잠깐 버스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선수들도 있고, 동료들과 수다를 즐기는 선수들도 있다. 몇몇 선수들은 전력분석에 시간을 쏟기도 한다. 손아섭에겐 그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
이달 초 원정경기를 가졌던 문학구장에서의 일이다. 훈련을 마친 손아섭은 조용한 곳을 찾았다. 롯데 더그아웃과 SK 2군 라커룸으로 이어지는 통로.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조용한 곳에서 한켠에 놓여진 의자에 손아섭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MP3에 담겨진 노래를 듣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방망이를 잡고는 그립 부분을 칼로 깎아낸다. 세심한 손동작이 한동안 계속됐다.
손아섭은 “잡을 때 뭐가 붙어있으면 느낌이 좋지 않다. 예민한 편이다.(웃음) 특히 방망이는 내가 쓰는 거 아니면 못 쓰고, 또 주황색아니면 못 치겠다. 그래서 아예 새 배트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손아섭은 매일 이렇게 자신의 배트를 관리하고 경기에 나선다. 환경이 열악한 원정에선 어려운 일이지만 홈경기에선 꼭 샤워를 하고 나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게임에 임하는 게 손아섭은 좋다.
이번엔 그의 MP3에 담긴 노래가 궁금했다. 손아섭의 나이(스물 일곱)를 감안해 볼 때 박자 빠른 아이돌, 걸그룹들의 노래가 예상됐다. 수영선수 박태환도 레이스에 들어가기 전 댄스, 힙합 등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푼다고 했다.
그는 “옛 노래가 좋은 게 많다. 요즘 노래보다는 가슴에 와닿는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음미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 경기를 앞두고 있으면 흥분되고, 내가 다혈질의 성격이라 다운 시키기 위해서 슬픈 노래를 듣는다. 사랑 노래, 이별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MP3에 담긴 130여곡 대부분은 발라드다. 그가 요즘 제일 좋아하고, 자주 듣는 노래는 2006년 발표된 최재훈의 ‘고마워요’라는 귀뜸.
비록 경기 30~40분 전 갖는 짧은 여유고, 음악을 듣거나 방망이를 손보는 일이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손아섭에겐 게임 못지 않게 중요한 준비과정들이었다. 홀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손아섭은 “그 시간 동안 마음도 다스리면서 매 경기 새롭고,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임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