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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이하 선수협)이 3일 임시총회에서 극적으로 내분을 봉합했다. 사무총장 선임문제를 놓고 갈등이 불거졌지만 재투표 결과 신임 지도부가 추천한 박충식씨 선임이 확정되는 것으로 실마리를 찾게 됐다.
그러나 선수협은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을 뿐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리 남아 있다. 표면 아래로 가라앉은 선수들 사이의 갈등도 그 과정에서 언제든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논란의 중심엔 ‘배후 세력'이 있었다. 갈등의 양측 모두 서로의 뒤에서 조종하는 불순한 의도의 사람들이 있다고 손가락질했다. 서로 합의점을 쉽게 찾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양측은 모두 자신의 뒤엔 아무도 없다고 했다. 순수성을 믿어달라고 주장했다. 사무 총장 문제는 해결됐지만 ‘배후 세력’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남은 불씨는 앞으로 전개될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배후 세력을 뿌리 뽑을 방법은 없을까. 갈등의 원인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답은 선수들에게 주어져 있다. 첫 단추는 자발적 참여와 관심, 그리고 희생에서 꿰어야 한다.
박재홍 신임 선수협 회장은 “회계 감사 과정에서 비리가 의심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했다. 그 규모는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혐의가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면 책임은 당연히 돈을 빼돌린 사람들이 져야 한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 갑자기 생긴 공돈을 반기기만 했을 뿐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관심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였다. 그 무관심이 지금의 대형 비리 의혹을 만들어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박재홍 신임 회장이 제기한 의혹 중 적지 않은 문제들은 선수협 대의원들만이라도 꼼꼼하게 따져봤다면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배후 세력이 의심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참여하고, 묻고 따지면 된다. 문제가 생길 여지를 미리 꺾어놓는다면 불순한 의도를 지닌 이들도 이내 흥미를 잃고 떠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또 방관한다면 없던 배후 세력도 다시 돈 냄새를 맡고 스멀스멀 기어나올 것이다. 특히 후배들에게 길을 만들어줘야 할 고참 선수들의 어깨가 무겁다.
두 번째는 스스로 깨끗해지는 것이다. 상대편의 의도만 의심할 것이 아니라 실제 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악마의 속삭임은 없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조언과 유혹은 구분이 매우 어렵다. 때문에 자신에게 더 가혹해야 한다.
선수협이 처음 생길 당시, 창립을 주도하던 선수들의 가장 큰 적은 같은 반대 편에 선 선수들이었다. 그때도 선수협을 주도하는 선수들의 뒤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있다는 주장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이 의심은 순수하게 참여하려던 선수들의 발길을 돌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의심의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 우린 매우 잘 알고 있다.
의심은 조직을 뭉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다. 누군가 선수들을 서로 믿지 못하게 조종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다시 돌아보고 점검해 봐야 한다. 상대가 아닌 내 등 뒤에서 말이다. 그래야 선수들 스스로의 힘으로 선수협을 불순한 무리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