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가 2002년 중국에 처음 진출할 당시 베이징은 정치적 수도일 뿐 경제적으로 발전한 도시가 아니었다. 현대차가 파트너로 점찍은 베이징자동차도 당시엔 무명이었다. 이미 10여 년 전인 1990년 전후 진출했던 폭스바겐과 GM은 모두 중국의 경제 중심인 상하이에 거점을 둔 상하이자동차와 손잡았다.
2000년만 해도 중국 승용차 시장은 연 60만대로 국내에도 못 미쳤다. 자동차시장 성장률은 10% 전후였지만 그나마 대부분 수요는 상하이·홍콩 등 동남부 연안지역에 집중됐다. 진출이 늦었던 도요타·혼다 등 일본 기업도 홍콩 인근의 광저우에 터를 잡았다. 이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의 당시 선택은 무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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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현대차와 베이징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후발주자인 현대차는 이미 레드오션이 돼 버린 상하이나 광저우 지역 진출이 만만치 않았다는 걸 깨닫는 동시에 수도 베이징을 선점하는 게 최선이라는 대안을 찾았다. 베이징시 정부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다. 당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상태였지만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의사결정을 미뤘다.
중국정부의 승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현대속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2002년 10월 현지 합자법인 ‘베이징현대’를 설립한 현대차는 베이징자동차의 경트럭 공장 개조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12월 EF쏘나타 1002대를 생산했다. 이듬해부터는 엘란트라(아반떼XD)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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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현대차의 선택은 옳았다. 2002년 10만대 전후던 베이징시 승용차 등록 대수는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매년 80만 대씩 늘었다. 2009년에는 20배인 400만대가 됐다. 현대차는 2002년 1공장에 이어 2008년 2공장, 2012년 3공장을 베이징에 짓고 현지 생산능력을 연 105만대까지 확장했다.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급기야 베이징시는 2011년부터 신차등록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신차등록 제한 도시는 상하이·베이징시 2곳뿐이다.
현대차는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외자기업이다. 이는 현대차가 중국 고위 간부와 ’꽌시’를 맺는데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2002년 12월 EF쏘나타 1호차 생산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던 자칭린(賈慶林) 당시 베이징시 공산당 서기는 현재 중국 공산당 서열 4위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정협)의 주석이 됐다. 지금도 정협의 공식 행사 차량은 쏘나타다.
현대·기아차는 폭스바겐과 GM에 이은 중국 3대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했고, 지금도 중국 정부가 꼽는 가장 모범적인 외자기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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