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프로 코치 대신 배구 전도사 변신한 '국대 센터' 윤봉우

"남들 안가본 길 힘들지만 재밌네요"
  • 등록 2021-12-20 오전 12:00:11

    수정 2021-12-20 오전 3:38:53

프로배구 최고의 센터에서 유소년 배구 전도사로 변신한 전 남자배구 국가대표 윤봉우. 사진=이석무 기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시절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던 윤봉우.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아이들이 2m 되는 저를 보고 처음에는 깜짝 놀라요. 하지만 배구공을 가지고 같이 노니까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한국 남자배구 국가대표 센터로 이름을 날렸던 윤봉우(39)는 지금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걷고 있다. 선수 시절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서 활약했지만 지금은 가장 낮은 곳에서 배구 대중화를 위한 바닥을 다지고 있다.

프로배구 코트에서 낯익었던 윤봉우를 다시 만난 곳은 서울 서초구 반포에 위치한 한 건물이었다. 그 건물 지하에 내려가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녹색-주황색의 배구 코트가 깔려 있었다. 윤봉우가 대표로 있는 ‘이츠발리(It’s Volley)’라는 배구 아카데미였다.

야구나 축구, 농구 아카데미는 이미 낯익다. 그런데 배구 아카데미는 생소하다. 지난 10월 ‘이츠발리’를 오픈한 윤봉우는 “아직 잘 모르다보니 계속 부딪치고 배우는 중이다”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재밌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윤봉우는 모범적인 선수 인생을 보냈다. 오랫동안 뛰었고 꾸준히 잘했다. 2005년 프로배구 V리그 원년부터 2020년까지 15시즌 활약하면서 블로킹을 907개나 기록했다. 역대 2위 기록이다. 블로킹 높이가 산처럼 높다고 해서 ‘마운틴 블로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윤봉우는 지난해 일본 프로배구(나고야 울프독스)에 진출해 한 시즌을 뛰고 돌아왔다. 일본에서 보낸 1년은 그의 생각을 180도 바꿨다. 일본의 배구 환경을 보면서 한국 배구의 현실을 생각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일본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배구공을 가지고 너무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나라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윤봉우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배구를 재밌게 가르칠지 고민했다. 유소년 클래스의 배구 수업을 동영상으로 꼼꼼히 담았다. 그 분량이 외장형 하드디스크 몇 개나 될 정도였다. 한국에 돌아온 뒤 자신의 이름을 건 배구 아카데미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우선 배구가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고민하고 결단할 시간이 필요했다. ‘괜히 시작했다가 망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마침 기존 프로팀에서 선수 또는 코치 제의도 들어왔다.

그래도 윤봉우는 배구 활성화를 위해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다. 코로나19 재확산이라는 장애물에도 점차 아이들과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배구를 하면 정말 키가 커지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배구 수업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에 이뤄진다. 어느덧 주말 스케줄은 거의 꽉 찬 상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3분의 2는 초등학생이다. 처음에는 공을 받고(리시브), 올리는(토스) 기본기부터 시작해 자기들끼리 경기까지 진행한다.

“배구공은 다른 공보다 가볍고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게임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여학생 비중도 높습니다. 배구를 통해 협동과 희생의 중요성을 배운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심지어 배구를 뒤늦게 배우고 싶은 20~30대 성인들도 많이 찾아온단다. 자체적으로 팀을 만들어 사회인배구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배구가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윤봉우도 갈 길이 멀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희망을 조금씩 발견하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제가 시작한 것이 전환점이 돼 한국 배구가 바뀌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엘리트 선수로 성공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고요. 아울러 은퇴 후 진로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배구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이츠발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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