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한국스포츠, 베이징 성과에도 웃을 수 없는 이유

  • 등록 2022-02-24 오전 12:01:00

    수정 2022-02-24 오전 7:00:55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하루에 겨우 40분 스케이트 탄 적도 있어요. 그것도 간신히 부탁해서 가능했죠.”

지난 20일 막을 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낸 정재원(의정부시청)의 말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선전을 펼친 한국 선수단이 지난 21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선수단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로 종합 14위에 올랐다. 대한체육회가 당초 내걸었던 금메달 1~2개, 종합 15위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대회 전에는 목표를 너무 소극적으로 잡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에선 금메달 1개도 못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냉정히 평가해서 이번 베이징에서 우리 선수들이 거둔 성과는 기적이다. 코로나19로 대회 출전과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큰 시련을 이겨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2020년과 2021년 국제대회를 거의 치르지 못했다. 올림픽만큼 중요한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불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국내 빙상장 및 훈련 시설은 1년 넘게 문을 닫았다.

코로나19가 훨씬 심각했던 유럽 국가도 빙상장을 비롯한 체육시설은 닫지 않았다. 최소한의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은 무조건 폐쇄였다. 선수들은 빙상장이 닫히면 기약 없이 쉬어야 했다. 그나마 잠깐 개방돼 30~40분 정도 연습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정재원은 “올림픽이 수능이라면 외국 선수들은 원래대로 할 수 있을 때마다 공부를 했다”며 “반면 우리는 공부를 못하게 방에 가둬놓고 책을 못 보게 하다가 수능 날이 다가오자 책을 던져주는 케이스였다”고 말했다.

코로나19만 탓할 것도 아니다. 사실 있는 인프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버려두고 있다.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들은 대부분 애물단지가 됐다. 수천억원을 들여 건립된 평창 슬라이딩 센터는 올림픽 이후 관리 문제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으로 한동안 폐쇄됐다가 간신히 오픈했다. 평창 대회 스피드스케이팅이 열렸던 강릉 오벌은 빙상장 기능을 이미 상실했다.

종목을 이끌어가는 사람의 문제도 컸다. 각 동계종목 연맹에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평창 대회 이후 관리 단체로 지정돼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다. 대한컬링연맹은 전 집행부와 현 집행부의 갈등으로 법적 다툼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정몽원 전 회장이 퇴임한 이후 여전히 회장 없이 표류하고 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베이징에서 나름 체면치레를 한 것은 평창의 유산 덕분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따낸 선수는 모두 평창 대회 메달리스트였다. 기존 에이스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기량을 유지한 덕분에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진짜는 4년 뒤다. 현재 한국 동계스포츠는 기초가 완전히 무너졌다. 코로나19 한파를 겪으면서 올림픽 꿈을 키웠던 어린 선수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반 선수들은 운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공부하는 학생’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던 정부 정책은 되레 ‘학교 운동부 해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되기 위해선 스포츠 생태계가 잘 돌아가야 한다. 선수가 마음껏 운동하고 지도자가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정책이 뒷받침되고 경제적 지원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메달 색깔이나 개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평창 올림픽이라는 엄청난 기회가 있었다. 평창 이후 한국 동계스포츠는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정작 남은 것은 없다. 오히려 평창 이전보다 더 열악해졌다. 베이징에서 나온 성과에도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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