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 9]정민철의 '라이징 볼에서 아리랑 볼 까지'

  • 등록 2007-08-20 오전 9:31:14

    수정 2007-08-20 오전 9:41:44

사진=한화 이글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정민철은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직구를 던지던 투수였다. SK 포수 박경완은 '달인에게 묻는다'를 통해 "내가 받아본 공 중 최고의 공은 정민철의 직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예전의 정민철이 아니다. 꿈틀대듯 살아있던 직구는 스피드와 함께 그 힘도 떨어졌다.

그러나 정민철은 다시 일어섰다. 직구의 힘이 빠진 자리를 제구력과 완급조절로 채워내며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그의 길었던 영광과 짧은 좌절,그리고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야구가 가장 쉬웠어요
정민철에게 야구는 어렵지 않은 운동이었다. 마운드서 힘껏 던지기만 해도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직구는 흔히 말하는 라이징 패스트볼 이었다.

떠오르는 공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론 덜 가라앉는 공이 정확한 표현이다. 투수가 던진 공은 포수의 미트에 닿기 전 중력에 의해 가라앉게 되는데 정민철의 직구처럼 회전이 강하게 먹으면 떨어지는 각도가 줄어들게 된다. 타자에겐 마치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정민철은 "팔꿈치 부상이 오기 전에는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직구 위주로 볼배합을 했다. '내 공은 잘 맞아야 파울 플라이다'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주로 직구로만 카운트를 잡았는데도 삼진이 많았다. 경기를 쉽게 풀어간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무나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법을 묻자 간단한 듯 하면서도 어려운 답이 돌아왔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강력한 직구를 던진다는 후지카와(한신)도 정민철과 유사한 답을 한 바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손가락이 남보다 길기 때문에 회전력이 남들보다 많이 가면서 공이 떠올랐던 것 같다. 장점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릴리스 포인트를 앞으로 끌고가려는 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상대 타자들이 마치 자기 눈 앞에서 공을 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팔을 최대한 앞으로 가져가기 위해선 그의 몸 전체가 함께 움직여줘야 했다. "하체,허리,상체,손끝 어디 하나 밸런스가 흐트러지면 릴리스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릴리스 포인트 실제로는 큰 차이는 안난다. 반뼘(정민철의 긴 손가락을 감안해도 큰 차이는 아니다)정도다. 그러나 몸이 유연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줄 때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약해진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년간의 짧은 일본 생활(요미우리)을 경험한 정민철은 2002년 다시 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했다.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그해 7승(13패)에 그쳤다. 이듬해 11승(10패)을 거뒀지만 양에 차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해봐도 예전같은 직구를 던질 수 없었다. 결국 2004년 '0승'이란 치욕적 숫자가 그의 이력에 남고 말았다.
 
"한번에 너무 빨리 무너졌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오로지 내 머릿속엔 파워 피처라는 생각 뿐이었다. 왜 내가 파워가 떨어지나 고민했다. 인정할 수 없었다. 혹시 게을러졌기 때문은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운동도 해봤고 내 스케줄 이상으로 땀을 흘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힘 때문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바뀌는 수 밖에 없었다.
 
"변화가 불가피했다. 컨트롤 투수로 바꿔야 했다. 처음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주위에선 "아리랑 볼 투수가 됐다"며 비아냥거렸다. 괴로웠다. 하지만 그 기간을 거치며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다. 이기는 투수가 강한 투수다. 지금은 팀에서 필요한 투수가 됐다는 것에 만족한다."

▲다시 기본으로
변화의 첫 단계는 '기초부터 다시'였다. 이미 잃어버릴 자존심도 남아있지 않았다. 초등학생의 심정으로 그들의 훈련법부터 다시 익히기 시작했다.
 
"난 컨트롤이 완벽한 투수가 아니었다. 변화구가 많지도 않았다. 기교파 투수로는 가진 것이 없는 셈이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등판 이외의 시간이었다. 불펜 피칭이 끝난 뒤 15m정도의 짧은 거리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제구력도 가다듬고 변화구도 새로 연마했다. 볼끝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100% 완벽하지 않으면 타자들에게 난타를 당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때를 회상하면 초등학생 기초 익히기나 마찬가지였다. 

짧은 거리에서의 피칭은 내게 큰 도움이 됐다. 18.44m에서 던지다 15m정도 되는 거리에서 던지면 우선 힘 부터 빼야 한다. 그래야 컨트롤을 잡을 수 있다. 짧은 거리에서 반복 훈련을 하다보니 제구 잡는 법을 익히게 됐고 자연스럽게 몸에서 쓸데없는 힘을 빼는 법도 터득하게 됐다."

▲완급 조절이란 무엇인가
투수들을 평가할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완급 조절이다. 힘을 줄때와 뺄때를 조절하는 능력을 뜻한다. 흔히 직구와 변화구를 고루 잘 섞는 것을 떠올리지만 그 속엔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정민철의 성공 요인 역시 완급 조절인데 그는 그 의미를 정확히 설명해줬다.
 
"예를들어 볼카운트 1-2라고 가정해보자. 나의 경우 직구를 던질 확률이 높은 카운트다. 타자도 알고 있다. 직구를 노리고 있다. 이때 내 선택은 직구다. 그러나 같은 직구가 아니다. 내 직구 스피드에 익숙한 타자를 상대로 그것보다 느린 직구를 던지는 것이다. 타자는 내게 익숙한 직구 타이밍에 스윙을 시작하지만 그보다 느린 직구를 치게 된다. 몇 km차이 나지 않지만 그 사이에 중심에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달라진다. 이것이 나의 체인지 오브 페이스(change of pace)다."
 
보충 설명을 위해 물리학의 힘을 잠시 빌려보자. 145km정도의 직구가 투수의 손을 떠나 홈플레이트까지 닿는데 약 0.4초가 걸린다.
 
산술적으로 10km정도 늦어질때마다 약 0.03초 정도 더 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직구를 노려도 145km인줄 알고 스윙할 때 135km의 공이 들어오면 0.03초 정도 반응이 빠른 셈이다. 
 
별 차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지겠지만 그 사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야구의 물리학(저자 로버트 어데어)에 따르면 우타자가 0.007초만 빨리 스윙하면 잘 맞은 공은 3루쪽파울라인으로 벗어나게(늦을 경우는 1루로) 된다. 이 미세한 세계에서 0.03초면 경기를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이다.  
 
정민철이 복잡한 수식이나 물리학을 따져가며 공을 던지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오랜 경험을 통해 몸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는 마운드에 서 있을 땐 그 누구보다 훌륭한 물리학자인 셈이다. 그래서 그를 달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믿음? 이기려면 무조건 믿어라
정민철은 여전히 자신의 주무기를 "직구와 커브"라고 말했다. 의외였다. 기교파 투수는 다양한 변화구와 뗄레야 뗄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민철도 기교파를 택한 뒤 써클 체인지업,포크,슬라이더(올시즌 새로 익힌 변화구)등을 장착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타자의 머리속을 복잡하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 그 무기로 타자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민철은 "많은 변화구는 내가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쓴다. 새로 익힌 슬라이더가 완벽하지 않지만 자주 쓰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다시 자신감이 등장한다.
 
"지금은 기교파 투수지만 여전히 직구가 자신 있다.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컨트롤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감이다. 135km짜리 직구를 던져 타자를 잡아낼 수 있다는 걸 머리는 알지만 몸이 따라가긴 쉽지 않다. 98km짜리 슬로 커브를 던질때도 그렇다. 느린 공이기 때문에 어떤 타자든 꼭 때려낼 것만 같다. 자신의 공을 믿어야 그런 공을 맘껏 던질 수 있다."

"투수는 마음이 첫째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자신감이 있어야만 컨트롤도 할 수 있고 타자와 승부를 압도할 수 있다. 자신감이 생겨야 훈련량이 늘어도 힘이 덜 들고 변화구도 빨리 익힐 수 있다. 자신감을 갖는 방법? 다른 것은 없다. 어차피 도망가면 진다. 이기려면 나를,내 공을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래야 공격적인 피칭이 가능하다. SK 정대현이 좋은 예다. 스피드는 별 것 아니지만 지저분한 공을 앞세워 위력적인 피칭을 하고 있지 않나. 타자가 친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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