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의 어제와 오늘

'아테네 아픔' 딛고 국민영웅으로
  • 등록 2008-08-11 오전 7:37:15

    수정 2008-08-11 오전 7:58:59

▲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무거워진 어깨였지만, 물속에서 박태환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올림픽 수영 자유형 400m 결승에서 박태환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조선일보 제공] "선생님…. 제가 은메달, 동메달 따도 대단한 건데…. 금메달 아니면 좀 그렇겠죠?"

경기 전날인 9일 밤. 박태환(19·단국대)은 스승 노민상 감독을 찾아 어렵게 입을 열었다. 노 감독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당부했지만, 박태환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제 19세 소년이 견뎌내기에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4년 전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15세로 대표팀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았던 까까머리 소년. 하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 400m 예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을 당하며 '부정 출발 소년'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붙었다. 그 뒤 박태환은 한 달간 방에 틀어박혀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켰다.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소년은 부활했다. 2005년 동아시아게임 자유형 400m 한국 신기록(3분48초71)으로 우승한 뒤 각종 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하며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3월엔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3분44초3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5살 때 기관지염 때문에 천식에 좋다는 수영을 시작한 연약한 꼬마가 한국의 수영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빛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른 뒤인 지난해 1월 촌외 훈련을 결정하면서 7세 때부터 그를 가르쳤던 노민상 감독과 헤어졌다. 박석기 전 국가대표 감독 등과 '전담팀'을 꾸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11개월 만에 결별해야 했다. 호주 전지 훈련을 코치도 없이 홀로 다녀왔다.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유명 댄스 그룹 '원더걸스'의 리더 선예와의 열애설도 튀어나왔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난 뒤 압구정동 광림교회를 같이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게 입방아에 오른 것이다.

결국 지난 2월 태릉선수촌에 다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노민상 감독과 재결합했다. 5개월여의 짧은 시간 동안 흐트러졌던 그의 체력과 정신력은 다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생긴 자생력도 그를 담금질했다. 아버지 박인호씨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갑자기 기우는 바람에 어린 시절부터 물질적인 고통을 겪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어머니 유성미씨가 유방암 수술을 받으며 투병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49.587㎡(15평) 전셋집에 살면서, 버스비를 아끼려 중학교 때 몇 ㎞를 걸어 다닌 적도 있다. 누나가 몇 백 원씩 용돈을 준 것을 꼬박꼬박 모아 어머니 약을 사드리던 아이다. 그는 자주 "성공하겠다. 돈 많이 벌면 부모님 집부터 사드리겠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박태환 가족은 얼마 전 잠실에 이사했다. 마음 속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낯을 가린다고는 하지만 속정이 깊다. '전담팀'에서 홀로 훈련하면서 대표팀 친구들과 멀어져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홀로 호주 전지 훈련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엔 태릉선수촌에 빵을 들고 찾아와 노민상 감독과 친구들과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한국의 역사를 바꾼 대단한 '소년'. 그래도 평소엔 19세 모습 그대로다. 캐릭터 인형(피규어)을 수집해 만지작거리며 심리적인 안정을 얻거나, 인기 그룹 '빅뱅'에 빠져있고, 밥보다는 스파게티를 즐긴다. 고기를 특히 좋아해 스테이크도 즐겨 먹는데, 10일 아침엔 노민상 감독이 마련한 곰국을 먹고 힘을 냈다.

지난해 가을 면허를 따자마자 베라크루즈를 구입해 드라이브를 즐기고, 한 달에 한 번은 단골 미용실에 들러 염색과 파마를 즐기는 발랄한 신세대다. 3년전부터 그를 담당한 압구정동 '쉬작' 미용실의 박정률 원장은 "곱슬머리인 데다 수영장 물 때문에 머릿결이 상해 트리트먼트를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그를 '독종'이라 부른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이 '대박' 금메달을 일궜다. 그는 '대박(大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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