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기획사 A대표는 “예전과 달리 지금 연습생은 귀하신 몸”이라고 말했다. 몇몇 대형기획사와 각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만 인재가 몰리면서 중소기획사는 ‘될성부른 떡잎 모시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09년 공시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 2종(배우·가수 부문)이 큰 몫을 했다. A대표의 푸념과 달리 그간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간의 ‘노예 계약’ 문제가 한국 연예산업의 뿌리 깊은 병폐로 지적됐음을 떠올리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연예인 전속계약은 기획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계약서에 의해 맺어지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스타급이 아닌 신인의 경우 기획사가 ‘갑’인 상황이 대부분인 탓에 불평등한 내용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이 발달해 정보가 쉽게 공유되면서 일부 연예인 지망생은 심지어 표준계약서에 맹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공정위가 제시한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신인 가수 트레이닝 비용은 기획사 측이 보장받을 수 없다. 나중에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정산이 안 된다는 얘기다. 투자 목적의 비용인 만큼 이는 상식적으로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기획사와 연습생 계약을 체결한 어느 연예인 지망생이 다른 기획사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적을 옮기는 경우다. 기존 기획사 처지에서는 그에게 쏟아부은 트레이닝 비용을 소위 ‘앉아서 날리는’ 셈이다. 돈 몇 푼이 다가 아니다. 아이돌 그룹으로 팀을 구성해 합을 맞췄는데 연습생의 이탈로 모든 계획이 차질을 빚거나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대형기획사야 자원이 풍부하니 별걱정이 없지만, 중소기획사는 여지가 없다. 중소기획사는 고스란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최근 한 연습생의 중도 포기로 팀 전체가 위기에 처해 실의에 빠진 B기획사 대표는 “허리가 아프다고 해 별다른 조건부(몇 년간 다른 기획사로 옮기지 않겠다는) 합의도 없이 계약을 해지해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C기획사에 들어가 데뷔 준비 중이더라”며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모가 회사를 믿지 못해 생기는 갈등도 많다. 한 가수의 매니저는 “얼마 전 한 부모가 찾아와 ‘우리 아들은 최고인 데 어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획사에 들어와서 빛을 못 보고 있다’는 식으로 욕설을 퍼붓고는 연습생을 데리고 나갔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대형기획사였다면 빨리 데뷔시키지 못해도 믿고 맡겼을 텐데 작은 기획사여서 괜히 사기꾼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이해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예 프로젝트 자체가 없어지거나 존폐 위기에 놓인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과연 우리나라에 손꼽을 만한 대형기획사가 몇 곳이나 되는가. 결국엔 가요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