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미투] 美 덴홀랜더처럼, '스포츠 미투 운동' 도화선 되나

  • 등록 2019-01-14 오전 6:00:00

    수정 2019-01-14 오후 12:45:28

30여년간 여자 체조 선수를 성추행·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져 미국 체육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래리 나사르 전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AP통신은 지난해 말 ‘2018년 올해의 스포츠뉴스’ 1위로 미국 체조계와 체육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미투 고발’을 다뤘다. 미시간주립대 및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가 1990년대 초부터 2016년까지 300여 명의 여자 체조선수들을 성추행·성폭행한 사건이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심석희가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받았다는 주장은 지난해 벌어진 ‘미국 체조 미투(나도 당했다) 고발’과 여러 가지로 비슷하다. 나사르의 처벌은 전직 여자체조 선수이자 현 변호사인 레이첼 덴홀랜더의 언론 인터뷰가 도화선이 됐다.

나사르가 저지른 범죄는 2016년 뒤늦게 밝혀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세계 최고의 체조 스타인 시몬 바일스를 비롯해 전·현직 대표 선수 150명이 ‘미투’를 외쳤다. 그는 2017년 연방 재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미성년자 성폭행 유죄가 계속 추가돼 최대 300년 형이 더해졌다. 미국 법원은 징역형 상한선이 없다. 여러 범죄의 형량을 모두 합해 계산한다. 이로써 그는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후폭풍은 거셌다. 스콧 블랙문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위원장, 앨런 애슐리 USOC 경기향상 책임자, 케리 페리 전 미국체조협회장 등 미국 스포츠계 거물급 인사들이 잇따라 옷을 벗었다. 나사르가 일했던 미시간 주립대는 5억 달러라는 엄청난 합의금을 내고 피해자들과 간신히 합의했다. 미국체조협회와 USOC를 상대로 한 소송은 수백 건이나 진행 중이다.

스포츠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부조리는 만연했다. 미국 체조 대표팀이 훈련하는 대표팀 센터는 미국 텍사스주 헌츠빌의 외진 곳에 위치했다. 나사르가 잘못된 행동을 해도 쉽게 노출되지 않았다. 어린 10대 소녀들은 체조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나사르에 맞서지 못했다.

미국체조협회와 미시건 주립대는 나사르의 추문을 미리 알고도 숨기기에 급급했다. 뒤늦게 보고받은 USOC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약자인 선수들을 지켜줘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부실 대응으로 미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더러운 스캔들을 낳았다.

나사르 사건은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 의혹 사건이 불거지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부랴부랴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순간만 시끄러웠을 뿐 근본적인 대책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미투’가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다. 추가 피해자가 있다는 주장은 있지만 구체적인 폭로나 물증은 아직 없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을 노출하면서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로 유사한 사건을 막는 것이다. 조재범 전 코치는 10여 년 전 승부조작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체육계는 그를 완전히 퇴출시키지 않고 오히려 국가대표 코치 자리에 앉혔다. 체육계 스스로 이번 사건을 자초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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