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북[그해 오늘]

韓 정부, 1982년 4월 2일 영화계 거물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북 발표
최은희, 1978년 북측 초청으로 홍콩 갔다 납북...전처 崔 찾다 申도 납북
5년 만에 北서 재회 후 재결합...김정일 전폭 지원 업고 영화 제작
해외 영화제서 수상 등 승승장구...해외 촬영 틈타 탈출 성공
  • 등록 2023-04-02 오전 12:03:00

    수정 2023-04-02 오전 12:03: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1982년 4월 2일. 정부는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한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한다. 그것은 바로 1960~1970년대를 풍미한 영화배우와 영화감독이 납북됐다는 소식이었다. 영화배우 최은희와 그의 전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신상옥이 바로 그들이었다. 1978년 1월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의 아들로 그의 후계자이자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지시로 최은희가 납북되고 전처인 최은희를 찾다 6개월 뒤에 함께 납북된 신상옥의 상태가 ‘실종’에서 ‘납북’으로 바뀌는 데 4년 3개월이 걸린 셈이었다.
북한에서 생활하던 당시 김정일(가운데)과 함께 사진을 찍은 신상옥-최은희 부부. 사진=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1978년 당시 최은희는 신상옥과 이혼한 뒤 신상옥이 설립한 안양영화예술학교(현 안양예술고등학교) 교장직을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다. 그때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등이 최은희에게 합작 작품 제작 및 후원에 관해 의논하고 싶다며 그를 홍콩으로 초청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홍콩에서 며칠 간 일정대로 움직이던 최은희는 마카오에 갔다가 예고 없이 중국 본토로 가는 배에 태워진다.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이미 그곳은 북한 남포항이었다. 남포항에 미리 도착해 최은희를 기다리고 있던 김정일은 최은희가 도착하자마자 크게 반가워하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때부터 최은희는 대한민국에서 실종자가 됐다.

신상옥은 실종된 최은희를 수소문하다가 자신의 지인과 친한 사이인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자문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납북이 틀림없다’는 말이었다. 당시 신상옥과 최은희는 비록 이혼한 사이였지만 수많은 작품을 함께 한 예술적 동반자였다. 크게 놀란 신상옥은 결국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에 갔다가 본인 역시 납북된다. 이즈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의 불화로 영화 제작 작업에 애로를 겪던 신상옥과 신상옥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의 교장이었던 최은희가 정치적 외압 때문에 월북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신상옥과 최은희는 북한으로 납치됐으나 그곳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면서 생활한다. 신상옥은 납북 이후 두 차례 탈북을 감행하다 잡혀 수용소 등에서 큰 고생을 했지만 단식을 계기로 기절한 이후부터는 다시 좋은 대우를 받는다. 신상옥은 김정일에게 반성문을 제출한 이후 5년 만에 최은희와 재회하고 북한에서 재결합을 한다.

최은희가 납북 직후 김정일의 초대로 김정일 생일 파티까지 초대 받는 등 그들 부부는 북한에서 최상류층의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훌륭한 대접에도 그들은 납치됐다는 사실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워 북한 생활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아울러 늘 도청을 당했고 감시를 받았으며 언제라도 필요에 따라 제거될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과는 별개로 신상옥은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북한에서 ‘신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차리게 된다. 이는 한국에서 정치적 외압으로 인가 취소된 자신의 영화사 ‘신필름’을 북한에서 재건한 것이었다.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북한에서 여러 영화를 제작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유럽의 영화제들에 출품하면서 자연스레 수상까지 이어지게 된다. 1984년 신상옥 감독이 ‘돌아오지 않는 밀사’로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을, 최은희가 1985년 ‘소금’으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 김정일은 크게 흡족해하며 이들에 대한 대우를 더욱 개선해 자유로운 해외여행까지도 허락해 줬다. 아낌없는 지원을 한 것은 물론이다.

한국 정부는 체제 경쟁, 언론 통제 등의 명목으로 이들의 납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이들의 활동 소식이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알려지자 납북 6년 만인 1984년 4월 2일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공개하게 된다.

북한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 가던 이들 부부는 1986년 3월 13일 영화 촬영 차 영세 중립국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 기회를 틈타 미국 대사관에 기습적으로 잠입함으로써 미국 망명에 성공하고, 2000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계 커플의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은 스토리였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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