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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세계에서 돈을 빼놓을 수 없다. 프로골퍼도 마찬가지다. 대회에 나가 버는 상금 이외에 기업과 후원계약을 통한 수입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돈에 따라 수시로 모자를 바꿔 쓰기도 하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을 놓지 않기도 한다.
박성현은 2014년 KLPGA 투어 데뷔하면서 가구업체 넵스와 3년 계약을 맺으며 인연을 시작했다. 그 뒤 2017년 미국 진출 당시 넵스는 메인 스폰서 자리를 내주고 서브 스폰서가 됐다. 당시도 넵스는 계속해서 박성현의 메인 스폰서를 할 생각이 있었으나 더 나은 조건에 계약할 수 있도록 양보했다. 대개는 메인 스폰서를 내주면 계약 관계를 끝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넵스와 박성현은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며 2021년 다시 재계약했다.
박성현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만큼 많은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넵스는 신인 시절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기업이었던 만큼 돈을 떠나 특별한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넵스는 무명이던 박성현을 발굴,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이후 지금까지도 유망주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기업과 선수 후원의 이상적인 관계다.
‘골프 여제’ 박인비와 KB금융그룹의 후원 배경엔 ‘가능성 있는 스타를 발굴하고 지원한다’는 기업 철학과 안목이 더해졌다.
박인비와 KB금융그룹은 인연이 시작된 건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B금융그룹은 부산에서 한일 여자골프 국가대항전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 박인비는 선수로 참가했고, 이때 KB금융그룹 관계자의 눈에 들었다.
KB금융그룹 관계자는 그런 박인비를 눈여겨봤다. 뛰어난 실력과 경기 중 흔들리지 않는 믿음직하고 든든한 모습에 매료됐다. 국민의 든든한 은행이라는 KB금융그룹의 기업 이미지와도 잘 맞았다.
KB금융그룹의 선택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박인비는 KB금융그룹의 후원을 받기 시작한 뒤 그해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3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또 2015년 4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박세리(44·은퇴) 이후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KB금융그룹은 “박인비 선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며 활동 지원을 약속했고, 9년 동안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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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김세영의 가능성을 보고 직접 후원에 나서며 시작된 인연은 올해로 11년째다. 박 회장은 김세영의 단순한 후원자를 넘어 힘들 땐 조언자의 역할까지 하며 선수를 직접 챙겼다. 2018년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서 31언더파로 LPGA 투어 최저타 우승 기록을 썼던 김세영은 우승 이전 찾아온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를 박 회장의 조언 덕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승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과거 좋았을 때 스윙 영상을 보며 다시 감각을 찾았다”며 “박현주 회장의 조언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51)은 올해로 SK텔레콤의 모자를 쓴 지 12년째다.
SK텔레콤과 최경주는 후원사와 선수와의 관계를 넘어서 2008년부터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회사가 지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최경주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최경주는 대회 때마다 재능기부에 나서거나 SK텔레콤이 펼쳐지는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 1월 PGA 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통산 3승을 올린 김시우(26)는 2013년 프로 데뷔 때부터 CJ와 인연을 맺었다.
2012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참가한 김시우는 대회 기간 CJ관계자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이제 막 프로로 첫발을 내디딘 선수에게 대기업의 관심은 큰 힘이 됐다. 특히 김시우가 2부 투어로 내려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계약금 등 지원을 깎지 않고 전폭적으로 밀어준 덕분에 3년 만에 PGA 투어 재입성에 성공했다. 2016년에는 윈덤 챔피언십에서 한국선수 최연소이자 프로 데뷔 4년 만에 PGA 투어 우승이라는 기쁨의 순간을 함께 맞았다.
프로골퍼에게 후원사는 단순히 돈을 주는 기업이 아니다.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믿음과 신뢰가 쌓여갈 때 인연은 더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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