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흙 색감·돌 형태까지…'파묘'가 미술 영역 넓혔죠[인터뷰]①

'파묘' 서성경 미술감독 인터뷰
축사에서 목격된 험한 것…붉은 등 아이디어 제안도
빛이 닿은 LA, 닿지 않은 묘…대사와 어우러진 공간들
거대 신목에 비닐하우스까지 직접 제작
  • 등록 2024-03-14 오전 7:00:00

    수정 2024-03-14 오전 8:34:05

[이데일리 스타in 이영훈 기자] 서성경 미술감독(영화 ‘파묘’ 미술총괄) 인터뷰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파묘’는 사실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이 영화에서 미술이 얼마나 보일 수 있을까’ 생각했던 작품이에요. 세트를 보며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저게 정말 지은 거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이니 말이죠.”

서성경 미술감독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의 작업이 고생스러웠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서성경 미술감독은 파죽지세로 흥행 중인 영화 ‘파묘’의 미술 작업을 총괄했다. 전통 무속신앙을 테마로 초현실적인 사건을 그린 ‘파묘’는 소재에 대한 철저한 고증은 물론, 영화와 어울리는 공간 및 배경 요소까지 현실감 있게 구현해 극찬을 받고 있다. 서울 중구 이데일리 사옥에서 만난 서 미술감독은 ‘파묘’ 속 묫자리 흙을 직접 만든 일화부터 나무와 무구(巫具), 관 등 소품과 주요 장소들의 세트 제작 비하인드를 전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진 기이한 일들을 그린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서성경 미술감독과 장재현 감독의 만남은 ‘사바하’에 이어 ‘파묘’가 두 번째다.

‘파묘’ 미술팀이 보국사의 세트 제작을 위해 스케치한 풍경. 보국사 앞의 장승과 솟대는 풍수지리의 기운을 보완하는 책 ‘가산비보’를 읽고 영감을 받아 배치했다. 요새의 느낌을 주고자 돌담을 쌓았고, 보국사 앞의 비닐하우스까지 미술팀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사진=서성경 미술감독 제공)
‘파묘’에 등장한 보국사의 오픈 세트 전경. (사진=서성경 미술감독 제공)
텍스트에서 이미지로…보국사 세트로 구현

‘파묘’는 텍스트와 상상력에 많은 의존을 해야 했던 작업이다. 그는 “촬영 전 수개월 정도 도서관에서 풍속, 무속, 도깨비, 귀신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이 영화의 세계관에 다가섰다”며 “구체적인 이미지를 묘사한 자료가 없어서 처음엔 어쩔 수 없이 텍스트에 먼저 접근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상상한 묘사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이미지가 많다”고 회상했다.

장재현 감독은 오컬트 작품을 만들지만 평소 CG(컴퓨터그래픽) 사용을 지양하고 현실감을 중시하는 연출 철학으로 유명하다. 영화와 어울리는 공간과 배경을 만들기 위해 주요 장소들을 세트로 직접 짓는 것은 물론, 흙의 색과 질감, 나무의 생김새 등 세세한 디테일에 공을 들인다. ‘험한 것’이 처음 등장하는 장소인 보국사도 오픈세트(촬영을 위해 야외에 세운 규모가 큰 세트장)다. 서 미술감독은 “감독님을 처음 만난 스태프들은 ‘저길 정말 짓는다고?’하는 반응이었지만, ‘사바하’ 때도 직접 세트를 지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며 “감독님은 이야기 자체가 초현실적이니 시각적으로는 실제 있을 법한 공간을 구현해야 사람들이 영화에 이입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파묘’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더 많은 작품이라 공간을 더욱 실감 나게 구현해야 했다고도 부연했다.

미술감독의 아이디어를 더해 탄생한 명장면도 있다. 극 중 봉길(이도현 분)이 보국사 근처의 돼지 축사에서 험한 것을 처음 만난 장면이다. 서 미술감독은 “축사 관련 자료를 찾다 발견한 건데 추위에 약한 아기 돼지들의 축사는 붉은 보온등을 켜 놓는다고 하더라. 축사에 어린 돼지를 키우는 설정이 아니었지만 보온등의 붉은 빛이 끔찍한 광경을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보국사의 세트를 구현하는 과정에 대해선 “소박하지만 누군가의 아지트, 요새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 돌담을 쌓았다”며 “스님의 별채 앞에 있는 비닐하우스까지 우리가 직접 만든 것이다. 세 달 정도 걸렸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파묘’ 미술팀이 스케치한 묫자리의 디자인과 색감, 주변 산의 풍경. (사진= 서성경 미술감독)


묫자리 구현에 20t 흙…거대 신목도 제작·조립

미술팀은 영화를 위한 공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파묘’는 공간 자체보단 공간을 구성하는 디테일에 더욱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서 미술감독이 ‘파묘’에서 유독 심혈을 기울인 부분도 흙의 색, 돌의 질감, 나무의 생김새 등의 자연 요소를 최대한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양지의 흙과 음지인 묫자리의 흙을 어떻게 차별화해 표현할지가 관건이었다. 양지 흙은 황토빛인데 음지 흙은 검은빛이라고 하더라”며 “여러 샘플의 흙을 사들여 일일이 색감과 질감을 비교했다. 원하는 흙의 색이 나올 때까지 샘플로 산 검은 흙을 촬영지의 흙과 끊임없이 섞었다”고 떠올렸다. 원하는 흙의 색이 나올 때까지 20t에 달하는 샘플 흙들을 주문했다고도 고백했다.

나무들도 극 중 배경에 어울리는 종류로 구매해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서 미술감독은 “묫자리의 경우 늦가을 낙엽이 진 스산한 곳을 떠올렸다. 묘 주변에 나뭇잎이 죽어 붉게 변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그림을 생각했다”며 “세트를 만들 때 죽은 나무들을 많이 옮겨 심고, 빛 바랜 풀, 붉은 소나무 잎들을 바닥에 깔아놨다”고 언급했다.

화림(김고은 분)이 커다란 신목(神木) 뒤에 숨어 험한 것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도 미술팀의 노고가 담겨있다. 서 미술감독은 “신목도 미술팀이 직접 나무의 디자인을 스케치해 만들고 심은 것”이라며 “길이 좁고 큰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산비탈이라 나무를 여러 번 쪼개 직접 운반하고 조립해야 했다. 다행히 배우들이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하니 만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수상한 묘의 비석 디자인을 두고도 한참을 고민했었다고 한다. 서 미술감독은 “그 비석에 이름을 넣을까 말까에 대한 고민만 굉장히 오랫동안 한 것 같다. 오랜 논의 끝에 이름을 넣지 않는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털어놨다. 박지용(김재철 분)의 LA집과 묘가 묻힌 산의 풍경은 화림의 초반부 대사를 참고해 이야기와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꾀했다. 서 미술감독은 “화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빛에 닿는 곳에 존재하는 것과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언급하는 대사가 있다. LA는 빛이 닿는 곳, 즉 강렬한 햇빛과 싱그러운 야자수잎 이런 요소들을 강조하는 그림을 생각했다”며 “반면 의문의 의뢰를 받은 할아버지의 묘는 빛이 닿지 않아 스산하고 늦가을 낙엽이 진, 산에 있는 묫자리를 생각했다. 묘 주변에 나뭇잎이 죽어 붉게 변한 죽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그림을 떠올렸다. 오픈 세트를 만들 당시 죽은 나무를 옮겨 심었고 풀 같은 것도 색이 바랜 것들, 붉은 소나무 잎 등을 바닥에 깔아 색감을 강조했었다”고 설명했다.

“흙의 컬러감, 돌의 생김새를 고민하며 ‘대중이 이것도 미술의 영역으로 봐주실까’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화려한 세트가 돋보이는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더러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파묘’는 미술이 고민해야 할 영역을 넓게 확장시켜준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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