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러이자 UFC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씨가 지난달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그가 조선일보에 게재된 일러스트와 함께 남긴 이 글에서 정 검사는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의 수사팀장인 정진웅(52·사법연수원 29기)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고, 한 검사는 의혹의 당사자인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이다.
한 검사장에 대한 휴대전화 추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몸싸움을 김 씨가 해설한 셈이다. 김 씨의 글에서 ‘풀 마운트(full mount)’는 종합격투기에서 바닥에 누워있는 상대방의 배 위에 올라타는 자세를 말한다.
해당 일러스트에서 묘사한 자세는 한 검사장의 입장문에 따른 것이다. 한 검사장 측은 지난달 29일 입장문에서 휴대전화 압수수색 과정에서 소파 건너편에 있던 정 부장이 몸을 날려 올라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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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 부장은 한 검사장이 증거인멸 정황을 보여 제지하기 위해 팔을 뻗는 과정에서 함께 바닥으로 넘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병원에 입원한 정 부장의 모습도 사진으로 공개됐다.
정 부장은 한 검사장 변호인이 현장에 도착한 이후 긴장이 풀리며 전신 근육통을 느껴 인근 정형외과를 찾았고, 의사가 혈압이 급상승한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은 뒤 바로 입원했고 다음 날인 30일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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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압수수색 땐 자장면 시켜먹더니” vs “막장 드라마 한 편”
두 사람의 육탄전은 장외전으로 번졌다.
김진애 원내대표는 “조사받는 피의자 검사가 자행한 초유의 공무집행 방해”라며 미국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선수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빗대 “오노의 페인트 모션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법무부 검찰개혁 추진지원단 단장을 지낸 황희석 최고위원은 “검사의 간부까지 하고서, 더구나 조국 법무부 전 장관 수사를 직접 지휘까지 한 자가 당당히 수사받으면서 방어하는 것은 모를까”라며 “누워서 침 뱉기”라고 비판했다.
진혜원(45·34기)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도 SNS를 통해 “공직자의 집을 압수수색한다고 ‘hox 변종들’(친 검찰 언론)에게 주소와 시간을 알려주고 자장면(한식?)까지 주문해서 먹는 등 문명국가의 공권력이 가져야 할 품격과 준법의식에 야만적 타격을 가해놓고, 막상 자기들이 당하는 상황이 되니 상당히 시끄럽다”고 비난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10시간 이상의 조 전 장관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집행 시간을 끌기 위해 고의로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수사팀은 “(조 전 장관) 가족이 점심 주문을 한다고 하기에 압수수색 팀은 점심을 먹지 않고 계속 압수수색을 진행하겠다고 했다”며 “그러나 가족이 압수수색팀이 식사하지 않으면 가족들도 식사할 수 없다며 권유해 함께 한식을 주문해 식사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통합당 소속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얼마나 두렵기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검사장을 폭력적으로 수사하는 건가”라고 했고, 같은당 소속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문재인 대통령 총감독, 추미애 법무(장관) 연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각본의 검찰발(發) 막장 드라마 한 편이 공연됐다”고 했다.
알고 보면 윤석열·추미애 대리전?
현직 검사들 간 전례 없는 몸싸움의 발단은 검·언 유착 의혹이다.
한 검사장은 이동재 전 채널 A 기자와 검·언 유착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기자의 구속으로 정 부장이 이끄는 수사팀이 힘을 받는가 싶었으나, 검찰 수사심의위가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리며 상황이 다소 역전됐다.
한 검사장은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한 검사장의 대학 선배이기도 한 정 부장은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발탁인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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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장은 이달 초 사건에 대한 수사가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에 이어 정치권 대립으로까지 번진 상황에서 관련 수사팀장으로서 이례적으로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끈 바 있다. 그는 지난달 7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치우침 없이 수사하고 있다”며 “다수의 중요 증거를 확보해 실체적 진실에 상당 부분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자신했다.
일각에선 한 검사장과 정 부장의 몸싸움을 두고 윤 총장과 추 장관의 ‘대리전’이라고 해석하는 만큼, 두 사람이 어떤 입장을 낼지도 관심이 쏠렸다. 일단 추 장관과 윤 총장 모두 검사들의 육탄전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나”… 검찰도 못 믿는 검찰
한 검사장은 몸싸움 당일, 정 부장을 독직폭행 혐의로 서울고등검찰청에 고소하고 감찰을 요청했다. 독직폭행은 인신 구속 등을 행하는 사람이 업무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해 체포·감금하거나 폭행·가혹 행위 등을 가하는 걸 말한다. 이에 서울고검은 윤 총장이 이 사안에 대해 보고받지 않기로 한 만큼 직접 감찰 사건을 맡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몸싸움에 이어 고소전까지 이어지면서 검찰 내부에서도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탄식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건 말할 것도 없다.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한 수사는 두 기관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이번 사건으로 ‘검찰도 못 믿는 검찰’만 확인시켜준 셈이다.
수사심의위 권고 불복에 이어 검찰 간부 사이 초유의 몸싸움까지 불사한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해 유의미한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