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사소하고 우연한 장소일지라도 연인들의 시간을 통해 ‘개별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연인들이야말로 장소를 발명한다는 게 저자의 명징한 메시지이다. 연인들의 장소에서 ‘사랑-하다’는 ‘장소-하다’와 동의어인 동시에 연인들에게 장소가 명사가 아닌 동사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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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속 사랑은 서점에서 일어난다. 서점은 “바깥 세계의 번잡함과 계산들을 피해 숨어드는 동굴 같은 곳”으로 “진열된 책들 안에 들어 있는 문장과 사유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계시적인 느낌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온갖 텍스트 속 ‘장소’를 둘러싼 사유의 조각들 틈 익명의 ‘나’와 ‘그’의 시선을 비춰 일종의 연시(戀詩·연애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침대는 뗏목이 되고, 욕조는 우주선이 되며, 계단은 방이 되는 식이다. 책은 문학과지성사가 새로 선보이는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가운데 한 편이다. 정치·사회·예술 등 다양한 국내 필자들의 사유를 담은 인문 기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