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인터뷰]짠돌이카페 '대왕소금'..집한채 날려도 재기 가능한 이유

직장인 창업 실패 지름길..인간관계에 끌려 비전공 분야 진출
주식보단 금처럼 묻어두는 투자 선호
  • 등록 2014-05-04 오전 6:00:47

    수정 2014-05-04 오전 6:00:47

짠돌이카페 이대표 씨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항상 불행은 내게 오지 않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대한민국 짠돌이 중에 짠돌이. 회원수 77만명의 국내 최대 짠돌이 카페 이대표(닉네임 대왕소금)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3년전 동업을 한 스포츠용품 생산공장이 노하우 부족으로 문을 닫게 생긴 것이다.

결국 그는 공장 계약기간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동안 뼈를 깎는 인내로 모은 ‘피같은’ 돈을 다 날렸다. 결국 그는 2001년 이 대표가 처음 짠돌이 카페를 만들 때처럼 원점에 서고 만 것이다.

불과 10년만에 되돌이표처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그는 허탈감에 빠졌다. 한달에 10만원씩 써가며 모아 산 집도 공중분해 됐고, 모아놨던 현금은 채무 상환에 다 써버렸다. 누구라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만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좌절은 길지 않았다. 불과 한 달만에 툴툴 털고 일어나 아내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으로 출근을 했다.

“물론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주위 멘토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분들이 해주신 조언들 덕분에 다시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했기에 맨땅이 두럽지 않다

인천 부평에서 이 대표의 아내가 운영 중인 피아노 학원을 직접 찾았다. 5층짜리 건물의 맨 위층인 학원 한켠에는 이 대표의 작은 작업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아내의 학원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며 “그때 이후 매출 5배 이상 뛰었다”고 말했다. 최근 살아남는 피아노 학원들이 없을 정도로 업계가 초토화되는 분위기지만, 이 대표네 학원만은 불과 6개월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어 “불과 1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며 “이렇게까지 빨리 자리를 잡게될 줄은 몰랐다”고 미소를 띠었다.

그의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뼛속까지’ 짠돌이인 그는 국내 짠돌이계의 1세대로 통한다. 2001년 한창 재테크 열풍이 불때 당시 처음으로 개설한 짠돌이 카페가 인기를 끌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에 노출됐다.

“정말 당시는 연예인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엄청나게 쇄도했어요. 개개인이 혼자서만 하던 재테크를 커뮤니티를 통해 결집하는 최초의 역할을 한 거니까요.”

당시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는 자신의 짠돌이 생활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를 보고 공감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한때 회원수 80만명까지 자랑했던 ‘거대 카페’가 탄생한 것이다. ‘짠돌이 정보’가 거의 없었던 당시에는 일반인이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 같은 정보도 신기해할 정도였다고 했다.

짠돌이 카페의 주인장답게 이 대표도 승승장구했다. 160만원인 월급을 모아 2년만에 주택장만에 성공했고, 마흔도 되기 전에 10억 모으기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엔 ‘오프라인’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온라인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항상 오프라인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사실 온라인 비즈니스는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게 잘 없거든요. 뭔가 구름 위에 붕 뜬듯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가 자신의 주특기와 거리가 먼 제조업에 손을 댄 것도 이런 로망이 크게 작용했다. 평소에 호형호제하던 지인이 괜찮아 보이는 비즈니스도 의기 투합하자고 제안해왔고, 마침 그런 니즈를 가지고 있었떤 이 대표는 덥썩 그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장을 인수하면 기술도 같이 인수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금형을 만드는데만 1년이 걸렸습니다.”

결국 2년도 채 되지않아 꿈에 그리던 제조업 비즈니스를 접고 말았다.

“엄청난 수험료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목표로 가는데 조금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일 겪고 인맥 재정립..자신만의 시간도 늘려

‘작은 실패’의 경험은 이 대표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인맥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인맥왕’을 자처할 정도로 인관관계를 중시했다. 일주일에도 모임이 4~5개가 될 정도였다. 집에도 항상 자정이 넘어서 늦게 들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큰일을 겪은 후부터는 ‘진짜 인맥’에 집중하게 됐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와 비즈니스관계에 대한 구분이 확실해졌다. 아무리 좋은 인간관계라고 하더라도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면 계약서부터 쓰자고 제안을 하는 식이다.

“서로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항상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게 되는거죠. 물론 일이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됐을 경우가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해두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좋아서’ 거절조차 하지 못했던 사소한 부탁들도, 이젠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결단력도 생겼다. 인관관계든 비즈니스관계든 상호간에 주고 받을 게 있을때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너무 야박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대표는 지금은 이런 명확한 관계가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않았다. 좌절을 있어도 포기는 없다는 불굴의 정신이다. 이러한 태도는 주변 멘토들의 영향이 크다.

“북한산 등산 모임이 예정돼 있던 날 비가 억수같이 왔어요. 다들 모임이 취소될 거라고 예상했죠. 하지만 모임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비가 와도 가기로 했으니까 등산을 강행한거죠. 그때 모임의 리더를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게 비가 오는데도 리더가 가자고 하니까 다들 군말없이 산정상까지 올랐습니다.”

다른 모임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단 가기로 했으면 비가와도 가는 것’. 그것이 그 모임의 리더들이 정상에 오른 방법인것이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잠시 돌아가진 하지만 그의 꿈은 계속된다. 오히려 삶의 앞뒤좌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마저 생겼다. 최근에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는 편이다. 가끔 모임도 많이 나가기는 하지만, 두세달에 한번씩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직은 젊은 30대. 지난 10년간 그가 겪은 일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했다. 이 대표에게 그를 롤모델로 삼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묻자 “본업에 충실하라”고 했다. 결국 짠돌이의 ‘절약테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금투자가 체질에 맞아..한달전 저점 매수

끝으로 그에게 ‘정말로 짠돌이처럼 절약만으로 돈을 모으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주식에도 손을 대봤지만 손해만 보고 나왔다”며 “몇해전 금 투자로 재미를 봤다”고 했다. 온스당 17만원선에 들어가 최고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최근에 다시 금값이 떨어지면서 다시 조금 매입했다고 했다.

“사실 금 투자처럼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 투자가 맞는 것 같아요. 주식은 한번 신경쓰기 시작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요.”

10년 후 딸아이 결혼식에 대비해선 명주 투자도 조금했다. 지금은 한독에 180만원 정도 하지만 10년 후에 되면 부르는게 값일 수 있다고 귀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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