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회장인데 총수는 아버지?…"경영서 손 떼" Vs "지배력 여전"

형제경영 전통 두산, 공정위 지정 총수는 박두병·박용곤 회장 뿐
김재철 전 회장 지분율 낮고 은퇴했어도 여전히 동원그룹 총수
공정위 "아들에 미치는 영향력까지 감안해 총수 지정"
전문가들 "재벌 규제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 바꿔야”
  • 등록 2019-05-03 오전 2:30:00

    수정 2019-05-03 오전 10:35:33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2016년 3월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박 회장을 그룹 총수로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공정위는 두산그룹 지배하는 총수는 박 회장의 부친인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이라고 봤다.

두산그룹은 회장이 여러차례 바뀌었다. 2대인 박두병 회장은 6남 1녀를 뒀다.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에 이어 고 박용오(차남)-박용성(셋째)-박용현(넷째)-박용만(다섯째)에 이어 박정원(장손) 회장이 차례로 두산그룹 회장을 맡았다. 두산그룹의 독특한 ‘형제경영’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공정위가 인정한 두산그룹 총수는 박승직 창업주 이후 2대 박두병 회장, 3대 박용곤 명예회장뿐이다. 공정위는 공식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한 회장이 아닌 가족모임의 좌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박용곤 명예회장을 그룹 총수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박용곤 명예회장이 지난 3월 타계함에 따라 공백이 된 총수자리에 박정원 회장을 지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과거 공정위가 두산그룹의 총수로 박용곤 명예회장을 지정한 명분대로라면 박용곤 명예회장 타계 이후 두산그룹 박씨 일가의 최고 어른인 박용성 전 회장이 동일인 지정 대상이다.

재계 관계자는 “매년 초에 열리는 두산 신년음악회 뒤풀이 장소에 가보면 두산그룹 박씨 집안의 최고 어른이 누군지 알 수 있다”면서 “그룹 경영은 박정원 회장이 총괄하지만 가족모임은 가장 어른인 박용성 전 회장이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아들에 회사 물려줘도 사망전까진 ‘총수’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의 범위를 지정하기 위해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을 우선 정한다. 공정위는 ‘그룹에 대한 사실상 지배여부’를 기준으로 총수를 결정한다. 판단 기준은 총수가 보유한 지분율(직접기준)도 있지만, 경영활동 및 임원 선임 등에 있어 영향력(간접기준) 등을 함께 고려한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은 퇴직금까지 챙겨 회사를 떠났지만 지주회사인 코오롱 지분 49.74%를 보유하고 있어 총수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동원그룹은 반대 경우다. 김재철 전 회장이 보유한 동원그룹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은 24.5%다. 경영을 승계한 김남정 부회장(68.0%)보다 적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김재철 전 회장을 총수로 지정할 계획이다. 창업주인 김재철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효성의 경우 조석래 명예회장이 2017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인 조현준 부회장이 회장직에 올랐다. 효성은 지난해와 올해 공정위에 총수 교체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공정위가 난색을 보이자 아예 변경 신청을 하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그룹에서 소유, 경영간 불일치가 발생하고 경제력 집중 우려가 있다”면서 “자녀가 경영을 승계하더라도 아버지가 여전히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만큼 사망 등 특별한 변수가 있지 않는 한 기존 기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 바꿔야”

공정위가 동일인 지정이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한국 재벌의 특성 때문이다

재벌의 고속성장을 뒷받침해온 순환출자, 채무보증, 총수일가 사익편취 등을 규율하기 위해서다.

강력한 사전규제였던 출자총액제한제도(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액의 40%를 초과해 국내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는 2009년에 폐지됐지만 여전히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재벌의 순환출자 문제는 거의 사라졌고, 최근 공정위가 발표한 ‘대기업 채무보증 현황’ 자료를 보더라도 채무보증이 문제가 되는 그룹은 없다.

전문가들은 재벌 지배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재벌에 경직된 사전규제를 적용하기보다는 사후규제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2014년 신설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의 경우 사전 지분율 규제가 있기는 하지만, 부당한 사익편취에 대해서만 제재하는 사후규제 성격이 더 강하다.

심지어 과거엔 자연인만 총수로 지정했지만, 공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분류하면서 법인을 총수로 지정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80년대 제조업 시대에 만들어진 대기업 규제를 보다 유연하게 설정하고, 문제가 되면 사후적으로 엄격히 제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과거 총수를 중심으로 재벌이 성장하던 시대에는 사전 규제와 동일인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필요했다”며 “하지만 점차 지배구조가 변화하고 있고,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등 시장에 의한 규율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공정위가 대기업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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