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처절히 우아한 추격 질주극…이제훈·구교환 연주에 94분 순삭[봤어영]

  • 등록 2024-06-18 오전 8:54:18

    수정 2024-06-18 오전 8:54:18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이종필 감독의 美친 쾌감 액션에 오감 만족도 200%. 피아노 건반의 희고 검은 부분이 어우러져 완벽한 협주곡을 완성한 이제훈·구교환의 추격 앙상블까지. 오늘의 현실, 내일의 선택. 당신은 무엇을 향한 삶을 살 것인가.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는 눈앞의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방황하며 삶과 씨름 중인 모든 이를 뜨겁게 할 전력 질주 추격극이다.

‘탈주’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이제훈 분)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 분)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북한을 배경이나 소재로 한 작품들은 많았지만, 주로 남북 관계를 통해 이데올로기 갈등과 휴머니즘을 조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탈주’는 북한을 배경으로 내세운 기존 영화들의 공식을 완벽히 비껴간다. 극을 구성하는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북한 군인이며, 남한의 인물들은 일체 등장하지 않는다. 군 생활 10년 후 전역을 앞뒀지만,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한 계급 때문에 전역 후의 삶에서조차 희망이 없는 북한 군사 ‘규남’과 그를 집요히 쫓고 옥죄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관계성과 줄타기가 골자다.

‘탈주’는 지켜야 할 오늘, 다가서고 싶은 내일 두 선택의 대척점에 선 주인공 규남과 현상의 쫓고 쫓기는 레이스와 갈등을 통해 삶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북한’이 배경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하나같이 극단적이지만, 그들이 처한 딜레마와 고민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 끝이 막다른 길일지라도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 미래에 선택을 걸고 싶은 규남의 소망을 우리 모두 크고 작게 갈망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꿈을 뒤로 한 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타협한 현상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삶을 살며 한 번쯤은 모두가 겪었을 이상과 현실 사이의 위태로운 줄다리기와 갈등을 ‘탈주’는 지독하고 집요한 추격 액션 장르로 녹여냈다.

시대의 아픔과 북한의 사회정치적 분위기, 신파적 요소 등 군더더기는 과감히 제했다. 대신 규남과 현상 두 캐릭터의 서사와 관계성, 그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 갈등을 조명했다. 덕분에 정해진 가혹한 운명을 마주한 두 인물의 다른 선택과 충돌에 더욱 집중하고 이입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치열한 질주, 추격을 지켜보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는 난 오늘과 내일 중 무엇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종필 감독은 ‘탈주’란 제목이 주는 기대감을 화끈한 전개, 간결한 편집, 사운드와 색감, 미쟝센 등을 총동원한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으로 맛깔나게 구현했다. 시각 및 청각적 쾌감을 모두 충족하며 러닝타임 94분을 매섭게 질주한다.

규남과 현상의 강력한 캐릭터성, 질긴 악연의 서사가 단조롭고 밋밋할 수 있는 추격극의 한계를 덮고 입체성을 더했다. 과몰입을 유발하는 이제훈과 구교환의 열연, 두 사람의 팽팽한 앙상블이 완성도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나는 내 갈 길을 가겠소”,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 “마음껏 선택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겠다” 등 명대사들은 능동적인 삶의 숭고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탈주’는 이제훈이 청룡영화상에서 구교환에게 보낸 러브콜이 성사된 작품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의 시너지는 예상대로 기다린 이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제훈과 구교환 모두 ‘탈주’가 각자의 필모그래피의 인상적인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될 전망이다. ‘규남’ 역의 이제훈은 마음껏 실패하더라도 내 손으로 운명을 정하는 삶을 살기 위해 눈에 독기를 가득 품고 달리고 또 달린다. 총을 맞고 늪에 빠지고, 흙바닥에 몸을 구르고 절벽에 몸을 날려도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생명력과 의지를 온몸으로 뿜어낸다.

구교환은 ‘탈주’의 품격과 개성을 높인 결정적 공신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력적인 추격자 캐릭터 ‘현상’을 완성해냈다. 날 때부터 흙수저로 군 전역 후에도 희망없는 삶이 예정된 규남과 달리 현상은 태생이 금수저, 성골인 자다. 규남과는 운전기사였던 규남의 아버지가 모셨던 군 장성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질긴 인연을 보유하고 있다. 규남을 친동생처럼 아끼는 듯하다가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규남의 주인이 된 듯 그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며 놔주지 않으려는 현상의 복잡한 내면을 구교환은 섬세하고 긴장감있게 그렸다. 모두가 벌벌 떠는 보위부 장교를 떠올리면 대개 큰 체구와 우락부락한 근육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구교환은 그와 정반대인 외형으로 피지컬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며 여유로우면서도 예민하고 치밀한 ‘현상’의 독보적 카리스마를 구축했다. 단순하고 기능적인 추격자의 기능을 넘어서 규남을 집요히 쫓으며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탈주, 혼란을 겪는 현상의 캐릭터 서사도 매력적이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체제와 운명에 완벽히 순종하듯 살아가나, 립밤부터 보습크림, 전자담배 등 외국 문물을 가까이하는 모습들로 현상의 숨은 자유와 갈망을 표현해낸다. 특별출연으로 깜짝 등장한 송강의 등장에 포기했던 꿈을 다시 소환하며 혼란스러워하는 현상의 복잡한 심리를 피아노 연주로 그려낸 점도 인상적이다. 규남과 동혁(홍사빈 분)을 눈 앞에서 놓친 후배병사를 흠씬 두드려 팬 후 “현재 네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다그치는 현상의 모습은 꿈을 좇는 규남보다 현실을 사는 우리가 취하는 삶의 방식과 더욱 맞닿아 연민을 유발하기도 한다. 꿈을 묻어두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살아가는,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나무라면서도 부러워하며, 매일 가슴 속 사표를 매만지는 현대의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액션극으로 즐겨도 좋고, 메시지와 캐릭터에 과몰입하고 보면 여운이 더욱 길다.

7월 3일 개봉. 러닝타임 94분. 12세 이상 관람가.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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