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딴청 피운 대통령, 혼나는 대통령

  • 등록 2023-02-10 오전 5:00:00

    수정 2023-02-10 오전 5:00:00

눈을 의심하다 눈가를 한 번 비벼봤다. 뉴스가 진짜인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반평생 언론사 밥을 먹고 살아왔지만 ‘가짜’이길 바라는 심정 또한 없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키우던 풍산개 두 마리를 파양한다는 뉴스였다. 사룟값과 관리인 인건비 지원을 둘러싼 현 정부와의 마찰이 원인이라는 내용도 달려 있었다.

개를 잠시라도 자기 손으로 키워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개와의 이별이 얼마나 애잔하고 오래도록 아픈 기억으로 남는지를. 때문에 개를 키우다 버리거나 남을 줘 버리는 일은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꿈도 꾸기 어렵다. 짧긴 했어도 반려견과 보냈던 시간을 지금도 그리워하는 기자 역시 아직도 반려견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재임 중 많은 비판과 원망을 몰고 다녔어도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직전까지 40%대를 달렸다. ‘우리 재이니’를 외치며 환호하는 콘크리트 지지층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지지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유신 독재에 항거하다 강제 징집된 운동권 투사, 특전사 출신의 군 복무 경력, 그리고 인권 변호사...어림잡아 말한다면 외유내강의 올곧은 선비적 이미지가 지지자들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그의 인상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반려견 파양을 했다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풍산개 파양에서 소환한 사실 하나는 그의 선한 인상 뒤에 독한 의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반려견과의 행복한 시간을 여러 차례 사진과 영상으로 공개한 것과 달리 성가시고 본인이 책임질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연장선상에서 미뤄 생각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연금 개혁이다.

재정 고갈의 경보음이 거세지면서 연금 개혁의 목소리는 그의 재임 중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나서지 않았다. 2018년 11월 보건복지부 장관이 개혁안을 보고했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놨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어느 부분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느냐는 질문에 ‘보험료 인상’이라고 말했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는 해법이 없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판에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눈높이 뒤로 숨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큰 틀은 정해져 있다. ‘수급 연령을 늦추고’ ‘더 내고 덜 받거나’ 아니면 ‘이들을 믹스한’ 방식의 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Z세대 사이에서는 벌써 개혁 거부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한 일간지가 Z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수급 시기를 70세 이후로 늦추자’(32.1%)는 답과 ‘차라리 국민연금을 철폐하고 개인이 노후를 책임지도록 하자’(20.6%)는 답이 1, 2위를 차지한 것이 증거다.

연금 개혁은 윤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이다. 그렇다면 가야 할 길도 분명하다. 솔직한 자세로 실상을 낱낱이 알리고,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국민 72%가 반대해도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역시 비난을 무릅쓰고 19년 전 개혁의 씨를 뿌린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도전은 좋은 교과서다.

2차 세계대전 중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하원 연설에 담긴 ‘피와 수고와 눈물’만큼 국민의 동참과 희생을 리얼하게 주문한 표현은 흔치 않다. 지지율 40%도 힘겨운 윤 대통령의 처지에서 본다면 연금 개혁은 위험한 정치적 승부처다. 그렇더라도 처칠의 각오와 진심을 윤 대통령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흥청망청 세금을 뿌리다 나랏빚을 400조원 넘게 늘리고 떠난 대통령보다 국민에게 혼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쇼통’ 대통령보다 궂은 일을 마다않은 대통령을 역사는 ‘진짜 일꾼’으로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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