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황혼의 정든 집, 누가 위협하나

  • 등록 2021-12-17 오전 5:00:00

    수정 2021-12-17 오전 5:00:00

실로 꿈을 꾼 것 같은 경험이었다. 정확히 50년 전 처음 방문했던 친구의 집에 다시 들어가 보게 된 것은 ‘우연’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비 내리는 작년 3월 어느 날 초저녁, 서울 혜화동의 한 초등학교 옆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간 기자 앞에서 그 집은 옛 추억을 불러내며 어스름 속에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옛친구는 외국으로 떠난 지 오래고, 반세기를 거친 동네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지만 골격과 외관이 거의 바뀌지 않은 2층 구옥에서는 향수를 자극하는 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선 후 2층으로 가는 회전 계단에 발을 올려놓으니 순간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아 그랬어, 이 부근에 고위 경제 관료였던 친구 아버님의 전신 사진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가 있었지! 이 방에서는 내가 친구와 하룻밤을 자며 수다를 떨었는데...”

친구는 이제 없는, 형님 명의의 집이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기자는 행복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찾아간 후 다시 갈 기회는 없었지만 즐거웠다. 미국에 거주 중인 마종기 시인이 근 50년 만에 어린 시절을 보낸 명륜동 옛집 마당에서 눈물을 글썽였다는 오래전 한 일간지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친구 집에서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을 정도면 부모님과 자신의 추억이 구석구석 숨쉬고 있을 서울 옛집에서 시인의 가슴 속에 밀려왔을 감동은 어땠을까...”

글머리를 시답잖은 개인적 체험으로 시작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정부가 그저께까지 납부하라며 102만 7000여명의 국민에게 때린 종합부동산세(주택, 토지분 합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숱한 논란과 사연을 달고 다닌 세금이니 내용은 더 덧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집을 ‘보통 사람’의 ‘안온한’ ‘삶의 터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종부세는 앞으로 재산세와 함께 많은 서민을 정든 집에서 내모는 흉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20%를 웃돌 것이라는 내부 추정치를 마련하고 관련 내용을 여당에 제출했다는 보도만 봐도 우선 그렇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서울 4채 중 1채가 종부세 대상이 될 것이며 최고 3배 뛰는 단지도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유층 밀집 지역은 줄잡아 1000만원 넘게, 그 외 지역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씩 종부세를 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산세를 합치면 해마다 뭉텅이 돈을 집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된다.

주목할 것은 1주택 보유자, 고령의 은퇴자, 주변이 개발된 덕에 절로 값이 뛴 낡은 집의 3가지 단어다. 이들 세 단어가 교집합을 이뤘을 때야말로 정든 집과의 이별 시나리오는 고스란히 현실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별 소득없는 은퇴 생활자가 매년 수천만원의 보유세(재산세+종부세)를 내려면 빚을 지거나 집을 팔고 더 싼 곳으로 옮기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더 있을까. ‘멋진 세금’ ‘착한 세금’이라는 여당 일각의 해괴한 억지 논리는 납세자들을 약 올리고 분노를 부추길 뿐이다. 수십년 살았던 보금자리를 세금 때문에 떠나야 한다면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기막히고 억울하다는 사연이 잇따르고 위헌청구 신청에 나서는 사람이 수천명에 이르자 선거를 앞둔 정부,여당이 민심을 달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종부세는 손보지 않으면 안 될 세금이다. 과세 대상이 2%도 되지 않는다고 정부는 엉뚱한 변명으로 방어막을 쳤지만 집값 오름세가 가팔라질수록 과세 대상은 더 늘어나 집 가진 사람은 누구나 짊어질 세금이 될 수 있다. 현대판 가렴주구다. 재테크 낙제생인 덕에 종부세에서 자유롭지만 기자 역시 앞으로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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