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칼럼] 영국의 '집포' 세대

  • 등록 2015-07-06 오전 4:01:01

    수정 2015-07-06 오전 4:01:01

[런던(영국)=박보경 해외통신원] 한국에서는 입시전쟁, 취업난, 열정페이 등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에 이어 오포, 칠포 세대까지 등장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비싼 물가와 높은 집세에 비해 낮은 초봉과 학자금 대출까지 갚느라 집을 포기하는 일명 ‘집포세대’가 늘고 있다.

영국 젊은이들을 곤경에 빠뜨리는데 한 몫 톡톡히 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비싼 집세다. 영국은 한국처럼 전세라는 개념이 없다. 일정 보증금에 높은 월세를 내거나 일년 치 집세를 한꺼번에 내면 끝이다. 특히 런던은 세계적으로도 살인적인 집세로 유명하다. 보통 원룸을 빌리는데 월 200만~300만원이 필요하며 방 한 칸 빌리는데도 100만원을 호가한다. 영국에서는 비싼 월세 때문에 다른 사람과 집을 공유하는 ‘쉐어(share)문화’가 보편적인데 주거형태로만 보면 한국의 공유주거, 쉐어하우스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는 사회초년생이 집이나 방을 빌리는 것도 힘들어 친구집에 얹혀살며 침대까지 쉐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자취나 하숙을 떠올리며 ‘다른 사람도 아닌 친구랑 같이 사는 게 어때서’라고 치부하면 곤란하다. 개인의 사생활과 개인 공간을 중시하는 영국을 비롯한 서양 문화를 생각해봤을 때 침대를 공유하는 것은 그만큼 삶이 팍팍하다는 증거다. 어디 그것 뿐인가. 여러 명이 집을 빌려 공동생활을 할 때도 거실을 방으로 개조한후 수용인원을 늘려 1침실 주택에 4명이, 혹은 2침실 주택에 6명 이상이 모여 살기도 한다. 그러다 집주인에게 들켜 쫓겨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에는 집의 상태가 어떻든 무조건 싼집을 찾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컨디션에 따라 많게는 주변 월세보다 200파운드(약 35만원) 이상 절약할 수 있지만 지진 나듯 금이간 벽, 여기 저기 피어오르는 곰팡이와 습기, 각종 벌레와 오래된 집의 부수품인 층간 소음과 함께 살아야한다. 주방기구, 세탁기, 보일러 등 제 기능을 못하는 기기들도 많으니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딱 맞다.

그렇다고 이게 비단 영국인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이겠는가. 영국으로 어학연수나 워킹 홀리데이를 오는 한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포, 칠포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 떠나온 이국땅에서 겪는 색다른 ‘집포’ 경험은 그들에게 또 한 번 좌절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3침실 주택에서 9명이 모여살다가 강제 퇴거를 당해 노숙자 쉼터에서 생활하거나 정원에 있는 작은 가든하우스를 불법 개조해 만든 집에 살다가 구청 조사를 피해다니는 영국의 젊은이, 집세를 아끼기 위해 빈 건물을 지키는 책임자로 일하며 가구 하나 제대로 없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청년 등 그들의 극한 체험은 끝이 없어 보인다.

한국에선 취업난과 비정규직이 낳은 ‘88만원 세대’와 각종 ‘포기 세대’처럼 영국 역시 낮은 연봉에 치솟는 물가와 집세 때문에 젊은이들의 불경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영국의 극한 상황이 한국의 그것보다 조금이나마 나아보이는 이유는 집이라는 한 가지만 ‘양보’하고 연애나 결혼, 인간관계, 꿈과 희망 등을 지키려고 애쓰는 그들의 몸부림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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