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 나 역시 공범자인가. 그 참담함의 이야기

다큐 영화 '공범자들' 리뷰
  • 등록 2017-08-19 오전 6:00:00

    수정 2017-08-19 오전 11:04:41

영화 ‘공범자들’ 티저 포스터.
[오동진 영화평론가] 혁명가는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단련되고 다큐멘터리 작가는 이어지는 작품을 통해 성장한다. 최승호 감독이 그렇다. 지난 17일 개봉된 ‘공범자들’은 전작 ‘자백’에 비해 ‘영화적으로’ 진화하고 훨씬 더 앞으로 나아 간 작품이다. 다큐 역시 꽉 짜인 이야기 구조,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커트와 커트 사이에 빈틈이 없다. 한치의 낭비와 소모도 없이 자신이 얘기하고 자 하는 주제로 관객들을 바짝 잡아당긴다. 관객들이 익히 아는 사실과 아는 척, 원래는 전혀 몰랐던 사실 사이의 공백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예를 들어 사람들은 MBC 사태를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란만장한 일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공범자들>을 보는 관객들은 그래서, 이 사회를 망친 주역들을 향해 분개하면서 동시에 자신들 역시 ‘공범’을 저질렀음을 깨닫게 된다. 그 통쾌함과 참담함 사이에서 <공범자들>은 관객들을 쥐락펴락 한다.

‘공범자들’은 이명박 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방송 장악, 곧 언론 농단 사태를 그린다. 이 두 정권은 지난 9년 동안 KBS와 YTN을 손아귀에 넣은 후 MBC를, ‘광우병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발한 ‘PD수첩’ 방송을 빌미로 완전히 재갈을 물리는데 성공한다. ‘공범자들’은 그 전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앞서 두 정권이 얼마나 ‘파시스트’적 사고를 가지고 언론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 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려 애쓴 작품이다. 다큐 역시 작은 이슈를 통해 큰 아젠더에 접근할 수록 그 얘기가 빛나는 법이다. ‘공범자들’은 지금 정부 바로 직전까지 이어졌던 국내 언론탄압의 과정들이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국정 농단의 사태와 직결 됐는지(예컨대 세월호의 비극까지 이어 졌 는 지)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영화 ‘공범자들’
그럼에도 ‘공범자들’이 최승호의 전작 ‘자백’과 다른 선상에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재미’ 때문이다. 이 다큐는 일단 매우 재미있다. 상당히 무거운 정치사회 이슈를 건드리면서도 다큐가 그럴 수 있는 데에는 그것을 다루는 ‘선수’, 곧 연출가가 매우 능숙한 손재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현실 사회의 비극과 희극, 그 역설의 톤 앤 매너를 한결같이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찰과 통찰을 반복해서 얻어 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공범자들’을 보면서 울고 웃는다. 웃다가 운다. 그것만큼 작품의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없다. 최승호가 다큐멘터리의 달인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최승호가 다큐를 가지고 관객들과 이제 좀 ‘놀 줄 아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최승호는 방송국 PD였다. MBC ‘PD수첩’의 고참 PD였다. 그래서 그가 MBC에서 해고되고 신생 매체 ‘뉴스 타파’로 적을 옮기고 이런 저런 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여전히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백’에서 ‘공범자들’로 오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시킨다. 이제 큰 스크린을 선택하는, ‘쌍방향 형(型)’ 관객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가를 확실하게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의 세계가 ‘객관화된 주관의 세계’에서 ‘주관화된 객관의 세계’로 넘어갔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영화 ‘공범자들’
이제 흔히들 애기하는 자연다큐멘터리 같은 사회 다큐멘터리‘따위’는 없다. 객관성, 중립성, 엄정한 사실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계급성, 당파성, 도덕성, 공정성을 유지하는 작품들이 ‘진짜 다큐’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그래야 다큐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느 쪽 편인지, 누구와 함께 하는지 불분명한 다큐멘터리는 동력이 낮다. 반면에 덜 익은 팩트로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은 불온한 데다 불안한 선동에 불과할 뿐이다. 그건 다큐가 아니라 드라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강 사이에 놓인 다리는 늘 흔들흔들 불안한 법이다. 자칫 저쪽으로 건너야 하는데 이쪽에서 머뭇대기 십상이다. 최승호의 ‘공범자들’은 낭심(囊心)에 힘을 꽉 주고 마치 능숙한 유격대원처럼 한번에 올바른 다큐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해 낸다. 최승호의 ‘(깡)다구(빨)’은 그야말로 역대 최고 수준인데, 얼굴에 강철판을 깐 듯 무심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이미는 사람 중에 국내에서 그만한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신(新)인류 이자 최고의 저널리스트이다. 많이들 얘기하듯 강철 심장이라고 하는 마이클 무어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내 언론자유의 최고의 공적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든 김재철, 백종문, 김장겸 등등 MBC 전·현직 경영진이든 그에게 당해 내지를 못한다.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가 이번에 보여 준 놀라운 공적 가운데 하나는 방송 다큐와 독립(영화) 다큐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이다. 기술은 융합하지만 사람은 쉽게 통합하지 못한다. 그동안 미디어의 융복합 시대가 열렸다고 끊임없이들 얘기해 왔지만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각자가 각자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 왔을 뿐이다. 최승호는 방송 다큐의 속도감, 그 기능성과 독립 다큐가 지니는 이른바 ‘지적(知的) 대중성(주체적으로 작품을 골라낸다는 점에서)’을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솔직히 수 많은 다큐멘터리 작가 가운데에서 유독 최승호가 그 일을 해내리라고 생각했거나 예감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그건 그만큼 그의 상황(MBC의 위기와 저널리즘PD의 위기)이 급박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목이 마른 사람이 땅을 파고 샘물을 구하는 법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빨리 온다. 국내 언론, 특히 방송국들의 사정은 실로 혁명전야이다. 최승호와 그의 작품 ‘공범자들’이 다큐멘터리라는 횃불로 세상을 바꾸기 일보 직전이다. 아마도 이번 다큐 ‘공범자들’을 본 수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동참할 것이다.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른다. 만고의 진리다.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은 늘 가슴 속에 불길을 안고 산다. <공범자들>이 그걸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함께합니다.

글을 쓴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상세하다 못 해 깨알과 같은 컨텍스트(context) 비평을 꿈꿉니다. 그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자세해서 읽는 이들이 듣다 듣다 외치는 말, ‘닥쳐라! 영화평론’. 그 말은 오동진에게 오히려 칭찬의 글입니다. 윗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닥쳐라!’ 댓글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화 ‘공범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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