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41)의 여섯 번째 시집은 ‘그’ 놀이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2018, 아침달)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그는 ‘그곳’, ‘그것들’, ‘그것’들을 호명하고 ‘그’, ‘우리’, ‘너’, ‘나’를 불러낸다.
시인에 따르면 제목은 시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지만, 시를 가둘 수도 있다는 것. 그는 “‘그것’이 ‘그들’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대명사로 바꾼다면 불친절하지만 접근을 조금 더 투명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수께끼 내듯 제목을 정했다고 했다.
“온다 간다 말없이 와서/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을 붙드는,/ 손을 뻗으니 온데간데없는”(‘그것’ 37쪽). “사람은 고유명사로 태어나 보통명사로 살아간다/ 제 이름을 대신하는 명사로 분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분해서 허허 웃어버렸다”(‘그’ 98쪽). 독자의 ‘그’, 혹은 ‘그것’은 다 다르게 읽힌다.
오 평론가는 “다짜고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듣는 이를 이야기의 당사자로 호출하는 일”이라면서 “시집은 무수한 ‘그것’과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고 거기에 독자를 연루시킨다. 시인의 대명사는 잃어버린 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있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가 ‘없다’라는 단어에서 ‘있었다’를 목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