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여성암]맛집과 명의의 조건

김윤환 이대여성암병원 부인종양센터 교수
  • 등록 2020-11-15 오전 7:58:32

    수정 2020-11-15 오전 7:58:32

[김윤환 이대여성암병원 부인종양센터 교수]예전에 살던 집 주변엔 맛집으로 소문난 아담한 칼국수집이 있었다. 매장이 협소해 서너 개의 식탁이 전부였고, 식사시간이면 점포 밖으로 삼삼오오 기다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급기야 어느 공중파 방송에 숨은 맛집으로 소개됐고, 덕분에 큰 인기를 얻어 이제는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지경이 됐다.

김윤환 이대여성암병원 부인종양센터 교수
그래도 그 집 칼국수 맛이 그리워 인내심을 짜내 칼국수 한 그릇을 사먹기로 작정했다. 한참을 기다려 차려진 식탁 위 모락모락 김이 나는 칼국수! 그런데, 왠지 이전의 그 맛이 아니다. 사실 큰 변화는 없는 듯 했지만, 면발은 손으로 뽑기에는 한계가 있어 기계로 뽑은 듯 했고, 정겹게 맞이하던 주인아주머니의 웃음은 무심한 종업원의 얼굴로 바뀌었다. 다른 노포들처럼 예전의 아담한 칼국수집으로 계속 남았다면 구수한 손맛과 따스한 정감을 계속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손님이 너무 많아져 칼국수 맛이 바뀌었듯 세상 일에는 적절한 한도가 있다. 예를 들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은 행복해질까.연구에 의하면 돈이 많아질수록 행복지수는 증가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오히려 행복감이 감소한다고 한다. 교실의 학생 수가 적어지면 교육의 질은 높아질까. 학생 수가 적어질수록 선생님 당 학생 수가 줄어드니 당연히 교육의 질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학생 수가 일정수준 이하로 감소하게 되면 학생들의 다양성이 감소해서 오히려 교육 효과는 급감한다.

병원의 경우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대형병원은 의료의 질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료는 인력과 시설, 규모에 비례해 고난도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하다. 손에 꼽는 대형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도 높은 의료의 질을 기대하고 또 체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수가 계속 증가한다면 실제 경험하는 의료의 질이 과연 높게 유지가 될까? 의료계에서는 가뜩이나 문제가 됐던 환자진료의 질이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이후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이 심화돼 한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료하고, 치료하고, 상담할 수 있는 한계점을 지났다고 판단하고 있다.

칼국수를 하루에100그릇 만들어야 하는 주방장에게 칼국수 장인의 섬세한 손맛을 기대하기 어렵듯,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방장 한명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적정 요리 수가 정해져 있다. 칼국수와 의료를 비교하는 것에 “과장이 심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칼국수 한 그릇에도 밀가루를 반죽하고 숙성시키고 밀대로 밀어 국수 가닥을 내고 뜨끈한 국물에 삶아 내는 각 과정에 장인의 경험과 기술이 녹아있다. 그것이 맛집의 비결이다.

부인암 수술을 주로 하는 필자는 수술도 한 그릇의 칼국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수술을 하는 집도의는 그동안 갈고 닦은 의학 지식과 다양한 수술 경험과 숙련된 기술을 모두 집약하여 환자 한 명 한 명을 치료한다. 최선의 수술과 진료를 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체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제는 의료 소비자가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대형병원에만 가면 내 모든 병이 가장 잘 치료될 것 같지만, 혼잡한 환자들과 의료시스템에 묻혀 사람이 아닌 질병으로 대우받기 십상이다. 눈을 돌려보면 주변엔 나름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지역의 대학병원, 전문병원들이 많이 있다. 여성암을 잘 보는, 심혈관질환을 잘 보는, 척추질환을 잘 보는 등등 특성화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형병원을 무작정 찾아가기보다 칼국수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낼 수 있는 그런 오래된 노포처럼 빛나는 전문병원이 여러분 주위에 있음을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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