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중대재해법 시행해보니 서류만 넘쳐나더라

입법과정 서두르다 보니 충분한 숙의과정 부족 평가
처벌 피하려는 기업들, 안전 근거 남기란 법률전문가
안전전문가 "안전 대신 자료 만드는데 시간 허비"
자율예방 전환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환영
  • 등록 2022-12-07 오전 5:30:00

    수정 2022-12-07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다음 달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된다.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고 처벌만을 강조한 법이 시행되면서 현장에선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지난 1월 2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부터 본격 논의가 시작된 중대재해법은 입법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법 제정에 소극적이었다. 바로 전년도인 2020년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을 당론으로 개정하고 아직 시행도 하지 않은 상황에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굳이 중대재해법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분위기가 있어서다.

하지만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가 2021년 신년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이 발언으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이 대표가 여론 전환을 위한 반전 카드로 중대재해법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재해법은 다수여당의 찬성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같은 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만큼 법안에 대한 충분한 숙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래서인지 중대재해법은 시행되기 전부터 산업계의 우려를 낳았다.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사업주 개인이 지도록 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산업계가 우려했던 곳은 중소기업이었다. 사업주의 역량이 회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소기업에서 사고로 인해 사업주가 처벌을 받을 경우 회사 자체가 도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법 통과 이후 본격적인 대비에 나섰다. 그런데 기업들의 대처는 예상과 다른 방향을 향했다. 로펌들과 계약을 맺고 컨설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은 사고가 나도 사업주가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묘책을 제시했다. 안전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문서화하고 근거를 남기란 것이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안전전문가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오히려 자괴감을 느끼게 됐다고 털어놨다. 안전전문가인 자신들은 뒷전이고 변호사들만 판을 치는 분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안전을 챙기는 대신 각종 근거자료를 만드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는 사이 중대재해법은 로펌들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각광 받게 됐다. 처벌을 강조한 중대재해법이 낳은 기괴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법 시행 후 사망사고가 줄지도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총 51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02명)보다 오히려 8명 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환영할 만하다. 이번 로드맵은 처벌 위주의 규제를 자율 예방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전전문가들은 안전이야말로 문화이고 습관인데 이를 바꾸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처벌 강화란 충격요법으로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이다. 이번 로드맵을 계기로 산업현장의 안전문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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