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로 둘로 나뉜 세계, 화해는 가능할까

[리뷰]연극 '태양'
日 마에카와 토모히로 희곡 원작
디스토피아 속 생의 의지 통찰 담아
과장된 몸짓, 만화적 연출 '독특'
  • 등록 2021-10-15 오전 5:30:00

    수정 2021-10-15 오전 5:3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1세기 초, 의문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친다. 감염자 중 바이러스 항체가 생긴 사람들은 노화하지 않는 우월한 신체를 가진 새로운 인류가 된다. 문제는 자외선에 매우 민감해 낮에는 활동할 수 없다는 것. 밤의 인간 ‘녹스’의 탄생이다.

연극 ‘태양’의 한 장면(사진=경기아트센터·경기도극단·두산아트센터, 유경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태양’은 여러 모로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연극이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원작은 ‘산책하는 침략가’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일본 극작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희곡. 2011년 발표된 작품이지만 팬데믹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작품의 주 무대는 10년 만에 봉쇄에서 풀린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바이러스 항체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극 중에선 골동품을 뜻하는 ‘큐리오’로 불린다)이 모여 살아가는 이 마을은 10년 전 녹스 주재원의 살해 사건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봉쇄를 당했다. 봉쇄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마을을 떠났고, 이제 이곳에 남은 사람은 스무 명 남짓. 작품은 녹스와 큐리오의 대비를 중심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극 중 녹스는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지닌 신인류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인간보다는 로봇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부자연스러운 머리 스타일, 로봇처럼 딱딱한 말투, 여기에 감성보다 이성을 추구하는 모습이 그렇다. 반면 큐리오는 꾀죄죄한 모습이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하다. 큐리오의 이상향 시코쿠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고향을 버리지 못한 채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연극 ‘태양’의 한 장면(사진=경기아트센터·경기도극단·두산아트센터, 유경오)
녹스와 큐리오는 일면 적대적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교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을 경계에서 경비를 서는 녹스 청년 모리시게 후지타(김정화 분)와 큐리오 소년 오쿠데라 데츠히코(김하람 분)은 서로의 다른 모습에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며 우정을 쌓아간다. 바이러스로 둘로 나뉜 세계는 그렇게 화해와 희망을 가늠해보지만, 비극을 피하지는 못한다.

바이러스로 피폐해진 세상, 곧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이지만 극 분위기는 매우 유쾌하다. 연극 ‘손님들’ ‘처의 감각’ 등을 통해 다소 과장되면서도 만화적인 연출을 보여준 김정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이러한 자신만의 연출 색깔을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반복하는 인물들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작품 속에서 녹스는 완벽해 보이는 반면, 큐리오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녹스에게 태양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녹스 출신 의사 카네다 요지(권정훈 분)가 태양을 마주하며 절규하는 장면은 인간으로서 생의 의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연극 ‘태양’의 한 장면(사진=경기아트센터·경기도극단·두산아트센터, 유경오)
마에카와 토모히로 작가는 ‘태양’의 한국 공연에 대해 “바이러스라는 표면적인 유사점만이 아니라, 이런 시국에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며 “계속되는 코로나 시국에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무척 기대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기아트센터, 경기도극단, 두산아트센터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배우 서창호, 임미정, 윤재웅, 김도완, 이애린, 이슬비, 권정훈, 김정화, 김하람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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