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은 고차방정식, 쉬운 것부터 풀어나가자"

■신년 특별 기고-최영준 연세대 교수
물러서는 대통령 국회 전문가들 평행선
복잡하고 어려운 일 작은 것부터 합의를
보험료율 2%↑큰 개혁 중요한 디딤돌
  • 등록 2024-01-16 오전 5:40:00

    수정 2024-01-16 오전 5:40:00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나의 노후를 생각해보자. 70세 혹은 80세 그리고 90세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건강하게 가족과 좋은 관계 속에 지내는 나를 그리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 중 하나는 경제적 여건일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 우리 어르신들의 삶은 이러한 멋진 전망을 실현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건강이 좋다고 응답한 이들은 27%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 만족한 인구의 비중은 55%였다. 또 소득수준이 여유 있다고 응답한 65세 이상 인구는 8%에 지나지 않았고 적정하다고 응답한 이들까지 합해도 40%가 되지 않았다. 반면 60%가 넘는 인구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사진=이데일리 DB)
현 노인뿐 아니라 현재 근로연령대 국민들의 노후 역시 그다지 안전하지는 않다. 2020년 말 기준 의무가입연령 대상 중 1263만명, 약 43.3%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10명 중 4명 이상이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고 이는 비정규 일자리를 가지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일수록 더 심한 것으로 파악됐다. 40년 가입해야 평균소득의 40% 정도의 연금을 받는데 평균 가입자가 30년 이상 보험료를 기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답이 된다. 하지만 이를 우려하고 심지어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현실은 극도로 낮은 출산율과 증가하는 평균수명이다. 이로 인해서 2050년에는 10명 중 4명 이상이 65세 이상 인구가 된다고 한다. 근로연령대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을 고려할 때 노년층이 가져가는 사회적 몫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몇 가지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만일 지금의 보험료율이 오르지 않을 경우 기금이 2055년 고갈될 수 있고 그다음부터 상당이 높은 보험료를 후세대들이 부담해야 한다. 그때까지 보험료율이 오르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과장된 측면이 크지만 이런 메시지가 국민이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러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2023년 7월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24%, 30대의 25%만이 향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재테크보다 국민연금이 더 낫다’라고 생각하는 비중 역시 20대 21%, 30대 15%로 나타났다. 과장된 우려 때문이라 해도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의 노후와 연금제도를 둘러싼 이러한 배경은 연금개혁을 더 강하게 추동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금개혁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어떠한 문제를 더 강조하는지에 따라서 의견이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에 지지부진했던 전 정부를 비판했던 현 정부가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개혁이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연내에 혹은 현 정부 임기 내에 연금개혁이 단행될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은 매우 적다.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인기’ 없는 대책 앞에서 한 발씩 뒤로 물러서는 대통령, 부담스러워하는 국회, 그리고 합의가 되지 않는 전문가들의 평행선 논쟁이 그 뒤에 존재한다.

연금개혁은 노후소득보장이나 재정안정, 그 어떤 것이 목적이든 빨리 될수록 그 효과가 더 강해진다. 뒤로 미루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도 제도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다만 연금개혁이 고차방정식처럼 어렵고 멋진 하나의 완성된 안으로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언급되지 않았지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의 관계나 퇴직연금과의 관계까지 확장되면 더욱 그러하다.

어떻게 풀어나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복잡하고 어려운 연금개혁, 합의할 수 있는 작은 걸음부터 내딛자는 것이다. A부터 Z까지 합의를 하기 전에 A와 B부터 합의하고 나머지를 맞추어 나가보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24년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예정대로 40%로 낮추지 말고 현재 42.5%(40년 가입 기준)에 멈추고 보험료율을 2% 높이는 것이 필자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작은 걸음이다. 그 이후 국민들과 함께 숙의하며 2~3년 시계를 잡고 큰 개혁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지금 대립하는 양쪽의 전문가 집단은 국민연금 강화와 재정부담 방식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쪽 전문가 대부분이 이 상태로 노후소득이 안정적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동시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고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노총과 같은 노조 쪽 역시 이 입장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고 유일하게 보험료 인상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쪽은 고용주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들이다.

경영자측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용주는 이미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을 부담하고 있고 1년에 1개월을 퇴직금으로 적립할 경우 이는 노동자 소득의 8.3%에 해당한다. 즉, 이미 국민연금과 퇴직금/연금을 부담하고 있는데 추가부담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큰 개혁으로 갈 때에는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2% 보험료 인상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각각 1% 추가부담이다. 이것이 안정된 국민연금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영세자영업자는 본인이 오롯이 2%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지원제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작은 걸음은 큰 개혁으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정부와 정치인들은 전문가들의 평행선 논쟁에 수혜자처럼 보인다. ‘비난회피정치’를 합의가 되지 않는 전문가들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의 경험은 정치의 책임성을 회복하게 할 것이며, 국민 역시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작은 걸음 이후에도 노후는 여전히 불안하고 보험료를 추가로 높이는 일은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큰 개혁에서 몇 가지 고려할 점들을 제안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먼저 국민연금이 국민 노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기초연금이라는 동생도 많이 컸다.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기초연금은 잘 보완할 수 있다. 더 나은 노동시장을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다. 둘째, 세대 간 분배정의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세대 내 분배정의도 중요하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면 같은 세대 내 부의 재분배가 잘 활발히 이루어 ‘빈곤’이라는 문제를 다음 세대에 넘기면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을 믿고 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제대로 설계된 공론화 과정을 포함해 2~3년 동안 개혁을 진행한다면 큰 개혁이라는 항구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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