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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명퇴’를 앞두고 있지만 자부심은 크다. 발전설비 규모 670메가와트(㎿)의 내 능력은 지난 37년 동안 전국에 싸고 좋은 전기를 공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원래는 40년을 꽉 채운 2022년 명예퇴직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금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고용주인 정부와 한수원이 올 2월 내가 월급 값을 못한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영구정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전기 생산을 멈추고 보직대기 중이다.
논란이 뜨겁다. 핵심은 내가 남은 기간 밥값을 할 수 있느냐 여부다. 삼덕회계법인이 지난해 한수원 의뢰로 작성한 내 경제성 평가 보고서는 내 평균가동률이 54.4%을 넘기지 못하면 운영할수록 손해라고 평가했다. 40%면 563억원 손해, 60%면 224억원 이득, 80%면 1010억원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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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2010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환경 규제 강화로 이용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2016년 설비 고장으로 두 번 발전을 멈췄다. 지난해도 경주 지진에 따른 설비 점검으로 영업일의 절반을 쉬어야 했다. 1000~1400㎿ 급의 잘나가는 후배와 비교해 힘이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내가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내 과거 35년 평균 이용률은 78.3%였다. 아직 정정하다는 얘기다. 또 외국에선 60년 이상 일하는 동료도 적지 않다. 난 이제 37년 차일 뿐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는 결국 올 9월 내 조기 명퇴를 결정한 한수원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이유로 공정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내 명퇴 시기의 최종 결정권자인 원안위는 10~11월 두 차례의 회의를 열었지만 감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회의때마다 회의장 앞은 찬반 시위로 북새통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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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전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체르노빌·후쿠시마 같은 대형 사고 복구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건 둘째 치더라도 수명이 다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곳 또 문제다. 우리나라에는 영구저장 시설이 단 한 곳도 없다. 임시저장시설도 포화 직전 단계다. 원전업계는 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장이 안전한 시설이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정작 어느 지역도, 그 누구도 집 주변에 자연 상태 복귀까지 10만년이 걸린다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저장시설이 들어서는 걸 원치 않는다.
올해든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어쨌든 나는 은퇴한다. 길어야 2022년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고리 1호기와 내가 비운 자리를 새로운 원전으로 채울 생각이 없다고 한다. 원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아니면 전력생산의 중추로서 역할을 계속할지는 지금으로선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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