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25기의 맏형, 제 이름은 '월성 1호기'입니다

1982년 첫 가동한 한수원 원전 2호 사원
계속 운영 여부 두고 논란..쟁점은 가동율 손익분기점
가동율 2017년 40.6%·3년 평균 57.5%·5년 평균 60.4%
25기 원전 전기의 23% 생산..1㎾h당 60원로 최저가
  • 등록 2019-12-01 오전 8:42:29

    수정 2019-12-01 오전 10:07:41

국내 원전 모습. 한수원 제공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내 이름은 월성 1호기다. 1982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취직해 전기를 만들기 시작한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원전) 2호 사원이다. 4년 전 앞서 입사한 1호 사원 고리 1호기가 2017년 6월 명예퇴직(영구정지)한 이후 이젠 원전 25기 중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는 ‘명퇴’를 앞두고 있지만 자부심은 크다. 발전설비 규모 670메가와트(㎿)의 내 능력은 지난 37년 동안 전국에 싸고 좋은 전기를 공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원래는 40년을 꽉 채운 2022년 명예퇴직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금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고용주인 정부와 한수원이 올 2월 내가 월급 값을 못한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영구정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전기 생산을 멈추고 보직대기 중이다.

논란이 뜨겁다. 핵심은 내가 남은 기간 밥값을 할 수 있느냐 여부다. 삼덕회계법인이 지난해 한수원 의뢰로 작성한 내 경제성 평가 보고서는 내 평균가동률이 54.4%을 넘기지 못하면 운영할수록 손해라고 평가했다. 40%면 563억원 손해, 60%면 224억원 이득, 80%면 1010억원 이득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내 가동률은 2017년은 40.6%, 최근 3년은 57.5%, 최근 5년은 60.4%다. 손익분기점을 오락가락한다.

한수원과 정부는 앞으로 내가 수익을 더 내기는 힘들다고 봤다. 이미 2008년 이후 10년 동안 전기생산 원가가 판매단가보다 30% 높아졌고 특히 2017년에는 원가가 판매가의 두 배나 됐다고 했다. 이 때문에 최근 10년 연평균 적자가 1036억원이 이른다고도 했다.

게다가 2010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환경 규제 강화로 이용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2016년 설비 고장으로 두 번 발전을 멈췄다. 지난해도 경주 지진에 따른 설비 점검으로 영업일의 절반을 쉬어야 했다. 1000~1400㎿ 급의 잘나가는 후배와 비교해 힘이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내가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내 과거 35년 평균 이용률은 78.3%였다. 아직 정정하다는 얘기다. 또 외국에선 60년 이상 일하는 동료도 적지 않다. 난 이제 37년 차일 뿐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는 결국 올 9월 내 조기 명퇴를 결정한 한수원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이유로 공정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내 명퇴 시기의 최종 결정권자인 원안위는 10~11월 두 차례의 회의를 열었지만 감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회의때마다 회의장 앞은 찬반 시위로 북새통을 이뤘다.

월성 1~4호기 운영변경허가안 등을 다루는 제111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가 열린 지난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원안위 건물 앞에서 탈핵시민행동 등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같은 시간 원자력노동조합연대 회원들 역시 원안위 앞에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제공
퇴직 시기를 둘러싼 논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원래 내 근무기간은 2012년 11월 까지였다. 당시 한수원은 원안위에 내가 10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져 나는 2년 8개월만인 2015년 6월 재가동에 들어갔다. 당시에도 내가 밥값을 못할 것이란 지적은 있었다. 환경운동연합이란 단체는 내가 10년 더 일하는게 이익은 커녕 비용부담이 더 커 1462억~2269억원 가량 손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사실 원전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체르노빌·후쿠시마 같은 대형 사고 복구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건 둘째 치더라도 수명이 다한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곳 또 문제다. 우리나라에는 영구저장 시설이 단 한 곳도 없다. 임시저장시설도 포화 직전 단계다. 원전업계는 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장이 안전한 시설이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정작 어느 지역도, 그 누구도 집 주변에 자연 상태 복귀까지 10만년이 걸린다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저장시설이 들어서는 걸 원치 않는다.

사람들은 원전이 위험하다며 꺼리지만 사실 우리가 만드는 전기 없인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나를 포함한 25기의 원전은 우리나라 전체 전기의 23%(9월 기준)를 생산한다. 1㎾h당 60원이란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한다. ㎾h당 170원이 넘는 재생에너지의 3분의 1 수준이다.

올해든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어쨌든 나는 은퇴한다. 길어야 2022년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고리 1호기와 내가 비운 자리를 새로운 원전으로 채울 생각이 없다고 한다. 원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아니면 전력생산의 중추로서 역할을 계속할지는 지금으로선 미지수다.

국내 25개 원자력발전소 운영·정비·정지 현황.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 그림 같은 티샷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