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스피드·멘탈·가족, 최민정을 이끈 세가지 힘

  • 등록 2018-02-18 오후 2:08:24

    수정 2018-02-18 오후 2:08:24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우승한 최민정이 시상식에서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릉=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은 감정 표현이 없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얼음공주’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 최민정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벌써 2번이나 울었다. 처음에는 아쉬움의 눈물, 그 다음에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최민정은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2분24초948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애 처음 출전한 올림픽 무대에서 금빛 질주를 펼친 최민정은 한국 선수단 3호이자 쇼트트랙 대표팀 두 번째 금메달을 선물했다. 동시에 500m 결승전 실격의 아쉬움도 깨끗하게 씻어냈다.

레이스도 압도적이었다. 2위인 중국의 리진위를 0.755초 차로 제쳤다.쇼트트랙은 100분의 1초를 다툰다. 종목 특성상 0.7초 차는 어마어마하다. 10m 이상 거리차가 난다. 복싱으로 따지면 완벽한 KO승을 거둔 셈이다.

▲알고도 막지 못하는 아웃코스 추월

최민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기술과 체력, 정신력을 모두 겸비한 완벽한 선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최민정의 강점은 놀라운 스퍼트 능력이다. 164㎝ 55㎏ 가냘픈 체격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가 나온다. 마치 엔진에 부스터를 단 것처럼 순간 가속도가 탁월하다.

대부분 선수들은 상대 선수를 추월할 때 안쪽을 파고든다. 반면 최민정은 바깥쪽을 선호한다. 훨씬 먼 거리를 돌아서 달려야하는 부담이 크다. 하지만 최민정은 스피드와 체력에 자신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선수는 견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바깥쪽으로 추월하는 선수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 선수가 최민정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다.

쇼트트랙 레전드인 전이경 SBS 해설위원도 “최민정은 나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라고 극찬할 정도다.

사실 최민정이 아웃코스 추월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체격이 작고 힘에서 밀리다보니 인코스로 파고들기 어려웠다. 잘못 안으로 들어왔다가 오히려 밀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체중을 불리고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었다.

바깥쪽으로 달리면 더 강한 원심력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짧은 보폭으로 더 빠르고 많이 발을 움직인다. 다른 선수보다 2~3번은 더 뛴다. 그렇다보니 스피드도 자연스럽게 더 나게 됐다. 최민정이 바깥쪽으로 달려도 빨리 나갈 수 있는 이유다.

물론 누구나 그런 기술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그래서 최민정은 누구보다 체력 훈련을 열심히 했다. 체력테스트에서도 왠만한 남자 선수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오늘날 최민정의 환상적인 스퍼트는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만든 결과다.

▲뼈아픈 실패로 단련된 강철 멘탈

최민정의 또다른 강점은 ‘강철멘탈’이다. 500m 결승전에서 논란의 실격으로 메달을 놓친 뒤 눈물을 쏟아냈다. ‘얼음공주’라는 별명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민정은 하루만에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났다. “내가 잘 탔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SNS에도 “꿀잼이었다고 한다, 가던 길 마저 가자”라고 글을 올렸다. 전날 최민정을 봤던 취재진이 ‘같은 시람이 맞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다.

최민정이 가진 멘탈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최민정은 “올림픽에 나오면서 결과에 대해서는 연연해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500m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건 금방 잊고 잘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최민정이 이같은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였다. 최민정은 성인 국가대표로 활약한 2015년과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최민정의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면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잘 나가다가 성장통을 제대로 겪었다. 국제대회에서의 부진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자동 출전권을 심석희(21·한국체대)에게 넘겨줘야 했다. 국가대표 선발전부터 다시 치른 후에야 평창행 태극마크를 다시 달 수 있었다.

선수로서 승승장구하다 처음 맛본 시련은 최민정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결과에 연연하기 보다는 내려놓을줄 아는 선수로 성장했다.

최민정은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는 선수 인생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이 나왔던 경기였다. 어찌보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 대회를 통해 내가 부진했던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엄마 손편지 보며 위로받은 최민정

최민정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사실 가족의 힘이 컸다. 특히 어머니 이재순(54)씨는 늘 뒤에서 최민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엄마는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딸 민정이에게 직접 써내려간 손편지를 선물했다. 편지 안에는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 너를 항상 믿고 있으니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즐겼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엄마의 편지는 최민정에게 부적처럼 자리잡았다. 훈련을 마치고 선수촌에서 쉴 때마다 그 편지를 꺼내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 최민정은 금메달을 딴 뒤 “엄마에게서 받은 손편지가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최민정은 “나를 희생해준 가족들을 위해 여행가고 싶다”며 “엄마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민정이 이런 얘기를 한 이유가 있다. 최민정은 과거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초등학교 때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서 말도 타고 잠수함도 탄 기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민정이 가족과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은 초등학교 시절에 머물러있다. 이후에는 본인이 선택한 선수 생활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얼음판과 숙소, 대회를 오가면서 가족들과 이렇다할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최민정에게 가족여행은 올림픽 금메달 만큼이나 바라는 일이다. 간절히 원했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최민정은 지금 가장 행복한 스케이터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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