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그 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설렌다

퇴계의 귀향길 270여km
물러남의 가치 되새겨줘
함께 걸으며 나누고픈 길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인문답사서로 느껴봤으면
  • 등록 2021-04-07 오전 5:00:00

    수정 2021-04-07 오전 5:00: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재작년 봄에 걸었던 서울에서 안동까지 이어지는 퇴계의 귀향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긴 여정이라 힘은 들었지만 거기에는 즐거움과 배움이 있었다.

왜 그 해에 그 길을 걸었던가? 그 해는 퇴계가 조정에서 물러나 마지막으로 귀향한 지 45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 옛날 69세의 퇴계는 한양에서 충주까지는 배로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갔고, 충주에서 안동 도산까지는 말을 타고 육로로 갔다. 그 방식으로 갈 수 없었던 우리는 남한강 강변길과 죽령옛길을 걸었다. 퇴계가 14일 동안 이동한 270여km 가운데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충주댐 수몰구간을 제외한 240여km의 코스였다. 일정도 퇴계의 당시 여정에 맞추어 하루 평균 20km 정도 걸었다.

여러 날 소요되는 그 길을 왜 구태여 걸어갔던가? 퇴계의 삶과 정신을 걸으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서이다. 열흘 이상 몸을 움직이며 걷다보면 스스로 체득이 있을 것이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 여정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될 것이라는 염원이 있었다. 특히 퇴계를 상징하는 ‘물러남(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우리들은 ‘물러남’ 보다는 ‘나아감(進)’을 선호한다. 그리고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고 드러내려 한다. 그러다가 끝내 좌절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개인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시류이다.

임금이 그토록 만류했건만 물러나 고향에서 추구하려던 퇴계의 바람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또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지금 우리는 그때 그가 남긴 가르침을 어떻게 배워 실천할 것인가? 그 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구도(求道)의 길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판단도 행사를 마련하는 데 힘이 되었다.

그 길은 다른 미덕도 지니고 있다. 먼저, 그 길은 거리 면에서 여러 해 전부터 많은 걷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올레길, 둘레길과 같이 장거리 트레킹 코스의 목록에 새롭게 이름을 올리더라도 결코 손색이 없다. 다음으로 그 길은 대체로 강변과 산골을 지나기 때문에 일반인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하고 안전하다. 또 수려한 경관은 국토 사랑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하고 여울 물소리는 속세의 마음을 씻어준다. 마지막으로, 그 길은 연도와 주변에 옛 사람들의 얼이 서려있는 역사유적지와 문화관광자원을 많이 품고 있다. 정자와 관아터, 서원과 사찰을 지나며 인문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이처럼 거리와 난이도 그리고 자연과 인문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그 길은 새로운 걷기 코스로 적격이다.

이 때문에 재작년 행사 때 참여했던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걷기 행사가 450주년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은 아쉽다며 매년 개최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참여하지 못했던 분들도 관심을 보였고, 언론에서도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며 지면을 많이 할애하였다. 이런 성원에 힘입어 지난 해 봄 제2회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 행사를 추진하였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뜻밖의 사태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 의미 있는 길을 매년 한 차례 재현 행사 때만 걷기보다는 누구나 언제든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은 5개 광역지자체와 10여 개 넘는 기초자치단체에 걸쳐있다. 통일된 표지판을 갖추는 것도 상당히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을 걸었던 필자와 도산서원 참공부 모임 연구자들이 누구나 찾아갈 수 있도록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인문 답사서를 펴냈다.

올해 재현 행사는 또 다시 중단할 수 없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옛 일정대로 4월 15일부터 28일까지 매일 4명만 걸어간다. 그 대신 비대면으로 보다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답사 책자 저자 13명이 글 쓴 일정에 맞춰 매일 2명씩 교대로 걸어가며 유튜브 채널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를 통해 그날의 구간 해설과 답사기 낭송을 할 예정이다. 아무쪼록 코로나 종식 후 많은 사람들이 퇴계 귀향길을 걸으며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고 자연을 즐기려 하는데 소중한 나침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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