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 소요되는 그 길을 왜 구태여 걸어갔던가? 퇴계의 삶과 정신을 걸으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서이다. 열흘 이상 몸을 움직이며 걷다보면 스스로 체득이 있을 것이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 여정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될 것이라는 염원이 있었다. 특히 퇴계를 상징하는 ‘물러남(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우리들은 ‘물러남’ 보다는 ‘나아감(進)’을 선호한다. 그리고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고 드러내려 한다. 그러다가 끝내 좌절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개인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시류이다.
그 길은 다른 미덕도 지니고 있다. 먼저, 그 길은 거리 면에서 여러 해 전부터 많은 걷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올레길, 둘레길과 같이 장거리 트레킹 코스의 목록에 새롭게 이름을 올리더라도 결코 손색이 없다. 다음으로 그 길은 대체로 강변과 산골을 지나기 때문에 일반인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하고 안전하다. 또 수려한 경관은 국토 사랑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하고 여울 물소리는 속세의 마음을 씻어준다. 마지막으로, 그 길은 연도와 주변에 옛 사람들의 얼이 서려있는 역사유적지와 문화관광자원을 많이 품고 있다. 정자와 관아터, 서원과 사찰을 지나며 인문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이처럼 거리와 난이도 그리고 자연과 인문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그 길은 새로운 걷기 코스로 적격이다.
이 때문에 재작년 행사 때 참여했던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걷기 행사가 450주년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은 아쉽다며 매년 개최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참여하지 못했던 분들도 관심을 보였고, 언론에서도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며 지면을 많이 할애하였다. 이런 성원에 힘입어 지난 해 봄 제2회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 행사를 추진하였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뜻밖의 사태로 중단되고 말았다.
올해 재현 행사는 또 다시 중단할 수 없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옛 일정대로 4월 15일부터 28일까지 매일 4명만 걸어간다. 그 대신 비대면으로 보다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답사 책자 저자 13명이 글 쓴 일정에 맞춰 매일 2명씩 교대로 걸어가며 유튜브 채널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를 통해 그날의 구간 해설과 답사기 낭송을 할 예정이다. 아무쪼록 코로나 종식 후 많은 사람들이 퇴계 귀향길을 걸으며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고 자연을 즐기려 하는데 소중한 나침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