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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의 선비이야기]조부모의 역할...퇴계 '손주 교육'에서 배운다

  • 등록 2021-10-08 오전 6:15:00

    수정 2021-10-08 오전 6:15: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前 기획예산처 장관]혈육과의 만남으로 설레던 추석명절도 지나갔다. 만났더라도 조부모는 손주들과 만남과 헤어짐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핵가족화로 생긴 거리감이 교육열로 벌어지더니 코로나19가 더 넓혔구나 싶다. 50~60년 전까지 손주 돌봄은 함께 사는 조부모 몫이었다. 생업과 가사에 매달린 부모를 대신해 육아와 훈육은 자애와 엄함을 두 날개로 조부모가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조부모와 손주는 떨어져 살게 되었고, 교육은 자연스레 집에 있는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이렇게 격대교육이 실종되다 보니 아이의 인성문제가 불거지고 조부모의 역할은 희미해졌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집안 자제 교육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등 바깥 분들의 관심과 역할이 컸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자녀의 세세한 부분까지 바로 잡으며 애를 썼다. 그 가운데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자제 교육은 더 각별했다. 학자와 스승, 관료로서 촌음을 아끼며 살면서 아무리 바빠도 집안 자제 교육에는 혼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교육의 궁극 목표는 사람이 되는 공부였다.

자신의 뒤를 이어갈 맏손자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 1541~1584)에 대한 가르침은 아주 주도면밀했다. 5살 때 천자문을 손수 써서 가르쳤고, 그 다음 효경을 읽게 하여 효도 등 지켜야 할 도리를 일깨웠으며, 14세가 되자 논어 등 경전을 익혀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도록 했다. 20대에 이른 손자를 위해 옛 성현의 훌륭한 글 39편을 가려 뽑고 손수 써 책을 만들고 잠명제훈(箴銘諸訓)이라 제목을 붙인 일도 유명한 일화이다.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 훗날 많은 학자들이 공부할 수 있게 목판으로도 제작되었는데, 필자도 몇해 전 도산서원 참공부 동지들과 함께 읽고 현대인을 위해 번역서를 펴냈었다.

손자와 떨어져 살 때는 편지로 교육했다. 손자가 15세 되던 시점부터 편지를 보내 잘못이 있으면 타이르고 훈계하여 스스로 깨닫도록 하였다. 그가 쓴 편지 3000여 통 가운데 맏손자에게 16년 간 보낸 편지가 150여 통이라니 놀랍다. 더구나 편지마다 지혜와 통찰이 가득 담겨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가르침이 된다.

편지에서 퇴계는 좋은 벗들과 공부할 것을 자주 권했다. 앞서가는 친구들의 학업과정에 대해 세밀하게 알리며 학습 동기를 고취시키곤 하였다. 손자는 벗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평생 소중히 여겼다. 이렇게 맺어진 인간적인 네트워크는 요즈음에도 진정한 친구 사귐을 보장하지 않겠는가?

퇴계는 손자에게 예절도 아주 강조했다. 70세 할아버지는 30세 된 손자에게 어른들 앞에서 하는 행동에 대해 나서지 말고 찬찬히 듣고 나은 것을 따르라고 조언하고, 남에게 보내는 편지의 글씨를 날려서 쓴 것을 꾸짖고, 어른께 보내는 문장 표현도 예를 들어가며 바로잡아 주고 있다. 그 세세한 가르침은 지금도 그대로 따르면 될 정도이다. 평생 자신에게는 엄격하고(持己秋霜) 타인에게는 관대하게(待人春風) 대하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은 퇴계지만 분신같은 손자에게는 이처럼 매우 엄하였다. 사랑하는 손주 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진정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가르침을 받은 맏손자는 할아버지의 삶과 정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퇴계 또한 손자의 역량을 믿고 대표 저술인 성학십도를 보완 정리하는 역할을 맡겼고, 제자들도 선생 사후 상·장례와 각종 추모 사업을 하면서 ‘스승의 뜻을 제일 잘 알고 있다’고 하며 그와 협의하였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삼년상을 치르다가 44세 한창 때 세상을 떠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할아버지 퇴계의 손자 훈도와 손자의 우러나는 공경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고 이육사를 비롯한 많은 후손과 후학들의 사람다운 삶으로 되살아났다. 이제는 도산서원과 선비문화수련원을 찾는 시니어들 가운데서도 퇴계 선생처럼 실천을 다짐하는 분들이 많아져 흐뭇하다. 앞으로 더 많은 시니어들이 행동에 옮겨 지금보다 더욱 존경받는 조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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