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직자
국가의 장기과제를 설정하고 문제를 풀어야할 공직자들이 펄펄 날아야 하는데 되려 최고 인재들의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소진시키는 역회전시스템이다. 우리 공직사회에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진 젊은이들이 몰려드는데도 이들을 분야별 최고 전문가로 키워내지 못하는 악습의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직사회 안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밖에 있다. 안에는 순환보직제로 불리는, 돌아가며 좋은 자리를 나누는 풍토고, 밖에는 공직을 선거승리에 따르는 전리품으로 보는 정치권의 그릇된 인사관이다. 여기에 양성 시스템의 부재 또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공무원들이 잠시 근무하고 옮기는 순환보직제는 부정부패를 막고 다양한 경험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크기가 작을 때는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의 글로벌 다양성과 전문성의 시대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큰 제도로 전락한지 오래다. 한 보직에 평균 1년 반 정도 일하다가 다른 자리로 옮기는 현행 제도 하에선 국가와 기업의 경제적 발전과 혁신을 제대로 서포트하기 어렵다. 작은 규제 하나도 3년간 담당과장이 5명 이상 바뀌는 바람에 손도 못대고 어쩔 수 없이 해외에 법인을 설립했다는 기업도 있다. 요직을 돌아가며 경험하는 순환보직제는 110만 공무원을 장차관으로 키우겠다는 것인데 세상에 어떤 기업이 모든 사원을 사장으로 키우는가? 모두가 ‘좋은 자리(?)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적당히 보직을 나눠 갖는 체계 하에선 구성원들의 도전정신이 말살되고 변화를 거부하는 무사안일과 하향평준화로 이어진다. 필자는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임명된 이후 9급으로 입직한 공무원도 10년 안에 5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9510 시스템’을 도입해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더 큰 일을 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능력 있는 공직자에게 도전정신과 성과를 인정하는 공정한 제도를 꿈꿨다. 나아가 전문직 제도의 확대, 한자리 근무기간을 늘림으로 전문성 증진, 민간과의 교류 확대, 5급이상 전 직급의 성과급 도입 및 급여 성과 비중 확대, 일 잘하는 공무원을 위한 ‘대한민국 공무원상’ 제정, 국민에게 지탄 받는 공무원인 경우, 퇴출 제도 도입 등을 제도화 했고, 20여개의 법 기준을 개정하여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연공서열과 순환보직제로 고착화된 공직사회에서 이러한 파격적인 인사개혁은 꽃 피우지 못했다. 30대 제1 야당대표가 나오는 시대에 공무원 사회의 폐쇄성은 국가적 해악이다. 스스로 개혁의 시기를 놓치면 반드시 외부로부터 충격이 올 수 밖에 없다. 이제 확실한 시스템 개혁만이 국민의 신뢰를 찾는 길이다.
첫 단추는 준비된 공무원을 뽑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려면 공공영역에 관련한 교육 기능과 공정한 채용기구가 필요하다. 특히 상업고, 공업고, 폴리텍 대학까지, 기업을 위해 준비된 좋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은 구축이 되었는데 공직 분야에 대한 국가적 양성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 중이다. 공직 양성시스템의 구축은 내년 5만명 이상의 신규 인력이 소요되는 공공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자 국가차원에서 4차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 단초이다. 10만불 시대의 국민 편익을 위한 지름길이다.
좋은 운영
또한 공무원 전문화의 국가 인재 활용 증대와 각 부처 인사 기능의 자율화를 도모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조직으로 국가인사원을 조직하고 (청와대 인사 수석 기능을 흡수) 원장의 임기를 10년으로 하여 정권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인재 운영 역량을 갖게 한다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적절한 균형과 함께 국가적 인재 운용의 미래 대비를 가능하게 하는 첩경이다. 새로운 공직자상 구현은 덤이다. 복지부동, 구태의연과 같은 공무원 비하와 국민 인식을 ‘일 잘하는 공무원’이라는 미래상으로 바꾸는 꿈을 꿀 수 있다.
임기 말, 공직 인사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은 국회와 사법부를 넘어 뭐든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다”라며 대통령과 행정부의 개혁을 주장했고,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독점적 검찰 인사권에 대한 개선 없이는 어떤 개혁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검찰이나 법관의 인사권 논란은 결국 법률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국가의 신뢰’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악영향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인사권의 권한과 절제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당을 가리지 아니하고 제기되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인사권의 남용방지와 절차적 정당성, 실제적 공정까지 담보 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 개혁이 미래 한국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정치를 바꾸자는 목소리에는 공감하지만, ‘586 세대 교체’만이 능사는 아니다. 대통령제의 폐해인 ‘권력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현실적 대안인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권의 적합성과 정당성을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요구해 국가의 기틀을 다시 놓을 때이다. 헌데 누가 이런 부름에 메아리로 답을 할까? 욕심을 넘어 역사에 남을 리더를 꿈꾼다면 그리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