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서가]①한경희 "인생 고비마다 힘을 준 짜라투스트라"

  • 등록 2018-04-04 오전 5:00:00

    수정 2018-04-04 오전 5:00:00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인터뷰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한경희생활과학이 더욱 단단해져서 돌아왔습니다.”

스팀청소기 하나로 생활가전 시장을 평정하며 ‘여성 벤처’의 상징으로 꼽혔던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가 최근 법원의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한 후 재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경영난으로 법원 문턱을 두드린 지 불과 10개월 만이다. 이제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영업 활동에 다시 나설 수 있게 됐다. 3일 만난 한 대표는 “구조조정을 통해 재기 기반을 닦았다”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수년 전만 해도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20대 대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여성 CEO 선두를 차지하곤 했다. 주부 감성이 느껴지는 ‘아이디어’ 하나로 한때 매출 1000억원에 육박하는 강소기업을 일궜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한 ‘성공한 1세대 여성 최고경영자’로서 월스트리트저널·포브스 등 해외 언론이 선정한 주목할 여성 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중소기업이 겪는 성장통이 한 대표에게는 혹독하게 찾아왔다. 한동안 큰 인기를 누렸던 스팀청소기는 이후 정체기에 들어갔고, 반면 화장품이나 음식물처리기, 전기프라이팬 등 신사업에서는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한 것. 여기에 과감하게 도전했던 미국 진출이 쓴맛을 보면서 경영난이 가속화됐다. 2009년 975억원 매출에 8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매출 1000억원 진입을 눈 앞에 두고 회사는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2014년 71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후 이듬해 회사는 자본잠식에 빠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에는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 대표가 회사채를 발행한 뒤 8억원가량를 가로챘다는 주장이 나온 것. 경영난을 틈타 각종 악소문도 무성했다. 결국 검찰에서 무혐의로 결론 내렸지만 한경희를 내세운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타격은 컸다. 한 대표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을가 봐 가장 많이 아팠다”면서 “회사가 어려워지면 전자제품은 특히 AS(사후관리) 때문에 구매를 꺼리는데, 한경희를 믿는다며 일부러 구매해준 소비자들에게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내 인생의 버팀목 ‘짜라투스트라’ 진정한 자유를 향해

갖가지 비난과 악재 속에서 한 대표를 지탱해 준 또 다른 버팀목은 독서였다. 특히 내성적인 성향을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꿔준, 인생에 있어 변곡점을 만들어 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짜라투스트라)’는 늘 곁에 두고 좋아하는 구절을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감수성이 예민했던 10대였다. “평생을 교육자로 지낸 아버지는 대나무처럼 강직한 분었는데 유독 딸인 나에게 엄했다. 밤늦게 책을 보고 있자면 ‘여자가 공부 잘해야 쓸모없다. 시집 잘 가서 현모양처가 되면 된다’며 꾸짖을 정도였다.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고 초기 어려움 겪을 때는 아버시가 집 문서를 내주실 정도로 응원했지만, 어릴 때는 늘 권위에 눌려 말 없이 지내야 했다. 한 대표는 과거 아버지에게 ‘당신 딸은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똑똑한 여자’임을 보여주고 싶었고, 자유에 대한 갈망도 컸다. 짜라투스트라는 그 때 만난 책이었다.

“‘지금 이 인생을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말하는 짜라투스트라가 당시 사회에 대한 반항과 삶에 대한 허무로 가득한 염세주의적인 10대 소녀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계기가 됐는데, 당시 나처럼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에 젖은 사람이 한 말이라 더 쉽게 다가온 것 같다.”

중년의 감성으로 다시 접한 짜라투스트라는 또 다른 용기를 줬다. 경영난과 함께 쏟아지는 주변의 오해와 눈총, 배신감을 이겨내고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었다. “짜라투스트라의 말처럼 ‘인생의 단 한 순간일지라도 끝없이 충실하게 살자. 이러한 순간이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을 원할만큼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견디기 어려운 삶의 순간에도 이러한 ‘영원 회귀’를 욕망하지 않았다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었다.” ‘나는 혼자서 걷는다. 너, 나의 고향인 고독이여!’ 이는 아무리 힘겨운 순간이라도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옳다면 그대로 실천하며 살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 구절이다.

한 대표는 이제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그는 “지난 몇 년 간 시련은 있었지만 전력질주하면서 더욱 단단해졌다”면서 “경영난에도 고객서비스 향상과 신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이 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회생절차 개시 후 채무조정을 통해 대부분 채무가 장기·순차적 채무로 바뀌어 재무구조가 안정화 됐다”고 덧붙였다. 내달에는 세탁전문점에서 사용하는 강한 스팀과 압력이 있는 스팀다리미를 선보일 예정이고, 렌털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조만간 500~600명의 서비스 인력 조직을 꾸려 공기청정살균기·물걸레청소기·LED(발광다이오드)마스크 등 5종의 신제품을 렌털 방식으로 판매해 이익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짜라투스트라의 저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생을 뚜렷한 목표 없는 ‘방랑자의 삶’에 비유했다. 삶은 최종 목표와 목적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 가치와 주어진 자신의 틀을 계속 깨는 과정의 연속으로 바라본 것이다. 한 대표는 “이러한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았다면 얻게 되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라고 말했다.

한경희 대표 약력

◇약력=△1964년 서울 출생 △대화여고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198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입사 △1988년 미국 라디슨호텔 입사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원 MBA마케팅전공 석사 졸업 △1998년 교육부 교육행정사무관 △1999년 한영전기 설립 △2006년 한경희생활과학으로 상호변경 △현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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