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樂카페]부활한 컨트리송과 멈춰선 K팝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 등록 2023-09-25 오전 6:30:00

    수정 2023-09-25 오전 6:30:00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사진=이데일리DB)
흑인 힙합음악의 오래고도 강력한 지배 속에서 미국 백인음악인 컨트리가 그 틈을 파고 솟아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1990년대 들어 대세를 점한 랩과 힙합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 진정한 글로벌화를 일궈낸 반면 컨트리 음악은 어디까지나 미국에 국한됐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케니 로저스, 돌리 파튼, 윌리 넬슨, 에디 래빗, 주시 뉴튼 등 컨트리 가수들이 팝 차트를 쥐락펴락했지만 그 시절을 끝으로 컨트리의 세계성은 전면 후퇴했다.

뒤이어 랜디 트레비스, 조지 스트레이트, 가스 브룩스 등 컨트리 음악계 슈퍼스타가 출현했지만 그 인기파장은 미국을 넘지 못했다. ‘월드’에 관한 한 컨트리는 담벼락이 존재했다. 샤니아 트웨인과 이후 2000년대의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공전의 히트를 쳤지만 컨트리보단 팝가수로 분류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나중엔 아예 팝으로 공식 전환했다. 정통 컨트리는 빌보드 싱글차트 상위권을 넘보지 못할 운명인 듯했다.

컨트리음악에 대한 유서 깊은 홀대가 최근 깨지고 있다. 올해 7월 마지막 날 빌보드차트에선 백인들도 화들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컨트리 가수인 제이슨 알딘, 모건 월렌, 루크 콤스의 노래가 빌보드 1, 2, 3위를 싹쓸이한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컨트리음악 최후의 전성기 때도 없었던 기현상이다. 모건 월런의 ‘라스트 나이트’는 무려 16주간 빌보드 1위를 점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한 유튜버는 그를 ‘미국의 임영웅’으로 수식했다.

일시적 흐름도 아니었다. 그 뒤에도 올리버 앤서니 뮤직이란 가수 그리고 자크 브라이언이 케이스 머스그레이브와 같이 부른 듀엣곡이 또 싱글차트 넘버원에 등극했다. 분석가들은 근래 시대정신이란 이름을 단 사회적 키워드들 이른바 공정, 공평, 정치적 올바름(PC)이 ‘서투르게’ 백인사회를 파고드는 것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이 이러한 곡들을 불러낸 부분적 배경이라고 봤다. 백인음악답게 보수성이 깔려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 현지에선 컨트리의 부상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컨트리는 나이든 중장년이 소비주체이고 여전히 앨범구매와 라디오청취 방식을 통해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보고에 따르면 음원 스트리밍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컨트리를 잘 듣지 않던 Z세대와 밀레니얼(우리의 표현으론 MZ세대)들의 ‘윗세대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 상승 중임을 말해준다.

미국의 청년세대들이 자국의 것에 거리를 둬왔으니 다른 나라 젊은이들은 오죽했을까. ‘미국적임’이 싫은 세계의 젊은이들은 컨트리를 멀리했다. 컨트리로 출발한 전설의 록 밴드 이글스는 컨트리 성향이 없는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를 내놓고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반면 흑인 힙합은 이전의 흑인음악인 소울과 디스코가 그랬듯 상대적으로 쉽게 지구촌 젊은 음악팬들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한국 대중가요의 주류도 힙합이다.

컨트리 음악관계자들은 랩과 힙합 성공경로의 시작이라 할 자국 인기차트의 정복을 컨트리가 수십 년 만에 모처럼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 감격하고 있다. 차트 배제라는 긴 세월의 참상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컨트리의 최근 강세를 두고 이분법적 사고를 동원할 것은 없다. 힙합에 ‘달도 차면 기운다’는 흥망성쇠를 들먹일 단계는 아니다. 어디에도 힙합이 쇠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없다.

대중가요는 일방향성, 획일성 그리고 독식을 경계한다. 컨트리의 이례적 상승은 필히 다양성으로 향하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무궁 광대한 음악우주를 어찌 한 가지 스타일로만 채울 수 있겠는가. K팝에 시사하는 바도 있다. 유일하고 일관되게 좋은 것이라는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다채로움의 구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래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함께 K팝이란 용어가 세계적으로 회자된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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