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K좀비가 담은 좀비사회의 은유들

  • 등록 2022-02-17 오전 6:15:00

    수정 2022-03-20 오후 5:51:27

[정덕현 문화평론가]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이 ‘한국형 좀비물’이라고 지칭된 건 우선 그 배경이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들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좀비물이라고 해도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출몰하는 좀비에 대한 공포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서울역이나, 거기서 타던 KTX 같은 공간에서 습격하는 좀비의 공포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부산행>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KTX에 오른 사람들이 그 속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왜 다른 공간도 아니고 하필 KTX인가는 좀비 장르 자체가 당대의 어떤 정황들을 끌어옴으로써 사회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시각이 담기곤 한다는 걸 떠올려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3백 킬로로 질주하는 KTX는 이 좀비가 창궐한 세상의 축소판이면서, 지금껏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고 또 달려 나가고 있는 우리네 사회를 은유한다. 개발시대의 압축성장을 거쳐 지금의 디지털 다이내믹 코리아까지 이어오고 있는 ‘속도의 사회’를 표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를 은유하는 KTX라는 공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들 역시 그 빠른 사회의 변화 속에서 그런 ‘속도전’의 강력한 동력이기도 했던 가족과 집단과 국가의 이름으로 몰개성화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한 시대의 아픔이 서려있다.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면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 이른바 ‘국기 하강식’에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올린 채 서 있던 그 시절의 풍경들. 당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국가의 주도아래 집단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게다. 이러한 사회 깊숙이 내려앉아 있는 군대식 문화의 풍경은 <부산행>에서 떼로 몰려다니는 좀비들의 모습에 투영되었다. 이른바 ‘K좀비’는 이런 모습으로 탄생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조선시대라는 시공간으로 가져왔는데 이것은 우리가 ‘헬조선’이라고 부르곤 했던 그 지칭 자체를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는 생사초로 살아난 왕은 괴물이 된다. 움직이며 피를 탐한다는 점에서 살아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움직이지 못해 조학주(류승룡) 같은 실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점에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존재. <킹덤>이 그리는 좀비는 2016년을 뜨겁게 달궜던 ‘국정농단’ 사태를 은유한다. 그러면서 좀비화된 권력이 야기하는 재난으로서 민초들에게 역병처럼 번져나가는 좀비떼들의 공포를 그려 넣는다. 여러모로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되지 않는 ‘좀비화된 권력’이 ‘헬조선’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킹덤>은 실제 조선이라는 배경에서 벌어지는 디스토피아를 통해 전한다.

최근 공개되어 또 다시 K좀비 열풍을 이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제 좀비화된 학교와 사회 시스템을 소재로 가져온다. 본격적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기 전부터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학교 풍경은 좀비들의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건물 옥상에서 벌어지는 일진들의 집단 폭행이나, 왕따 여학생의 성 착취물을 찍어 협박하는 일진들, 이런 일들이 벌어져도 쉬쉬 감추려고만 하는 선생님들은, 모두 떼로 폭력에 폭력을 더하는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거기에는 입시경쟁에 매몰되어 당연한 듯 폭력이 자행되는 학교 시스템이 존재한다. 아침에 늦지 않기 위해 우루루 교문을 향해 달리는 학생들의 풍경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입시경쟁 속에서 좀비처럼 공부만 하는 반장이나, 폭력을 참기 어려워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여학생, 아기를 화장실에 낳아 버리고 도망치는 학생 같은 인물들도 남다른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거기에는 학생들을 생각 없는 ‘입시 좀비’처럼 취급하는 현 교육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그들은 입시 경쟁 속에서 누구는 1등이고 누구는 꼴등이며 누구는 일진이고 누구는 왕따였다. 하지만 서로 물고 뜯는 경쟁 속에서 모두가 ‘평준화된 좀비’로 전락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힘을 합쳐 때론 싸우고 때론 자신을 희생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에게 엄청난 부채감을 느끼게 만든다. 드라마가 대놓고 세월호 참사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을 담아낸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끝내 오지 않는 어른들을 기다리며 “왜 우릴 버렸죠?”하고 묻는 아이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운 건 그런 의도적 연출이 끌어온 현실이 너무나 참혹해서다.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른바 ‘절비(절반만 좀비)’라 불리는 ‘무증상 감염자들’은 색다른 시사점을 만든다. 이 절비들이 경쟁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끝까지 타인을 물어뜯으려 한 윤귀남(윤인수)이 좀비보다 더 무서운 ‘진짜 좀비’가 되는 반면, 변하려는 자신을 억누르며 친구들 편에서 그들을 돕는 반장 최남라(조이현)가 오히려 좀비들과 대적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는 점이 그렇다.

이른바 ‘K좀비’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최근 좀비물이 K콘텐츠의 중요한 한 장르가 되고 있는 건 우연일까. 거기에는 ‘좀비’라는 존재가 가진 은유적 특성이 그간의 한국사회를 통렬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줘서가 아닐까 싶다. 엄청난 속도로 떼로 몰려다님으로서 때론 단단해 보이는 유리벽도 깰 정도의 집단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렇게 순식간에 쏠려 물고 물리는 경쟁 속에서 비극적인 아비규환을 만들기도 하는 존재. 살아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그런 존재. 어쩌면 한국사회의 현실을 다양하게 담아내는 K좀비가 쏟아져 나오는 건 이제는 이러한 ‘좀비사회’로부터 벗어나고픈 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대중들은 더 이상 살아있으되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인 좀비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미 감염되었다고 해도 바른 선택을 하려 노력하는 ‘절비’로라도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어쩌면 새로운 희망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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