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의 경세제민]미중 패권전쟁, 거꾸로 가는 한국경제

  • 등록 2021-07-08 오전 6:00:00

    수정 2021-07-08 오전 6:00:00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전 고려대 총장] 미·중 경제영토전쟁이 치열하다. 지난 달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국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저개발국가 인프라건설에 협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을 내세운 이사업은 미국의 주도하에 동맹들이 힘을 합쳐 중국이 경제영토 확장전략으로 시행하고 있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사업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업규모가 세계2차 대전 후 유럽재건을 위해 실시한 마셜플랜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인도·태평양·아프리카·중남미 등에서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해 중국의 경제영토 남하전략을 막을 예정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외국기업이 대중국 제재에 협조할 경우 처벌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대중압박을 겨냥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경고하며 중국의 길을 가겠다고 천명했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경제패권을 놓고 사생결단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막강한 경제력을 확보한 미국은 제2차 대전이 끝나자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를 구축하고 세계경제패권을 장악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구축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서방국들의 자본주의와 대결을 벌였으나 시장기능을 무시하는 사회주의 속성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1980년대 말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 경제가 무너지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는 세계경제패권의 유일체제가 되었다.

최근 팍스 아메리카나가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바로 중국의 중화주의 경제패권인 팍스 시니카(Pax Sinica)다. 중국은 1976년 10여년에 걸쳐 진행됐던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개혁개방정책으로 전환해 고도경제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 최대인구를 바탕으로 제조업을 빠른 속도로 발전시켜 세계의 공장으로 위상을 확보했다. 2010년대 들어서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 미국에 이어 G2국가로 부상했다. 2012년 중화주의 부흥을 통치이념으로 제시한 시진핑 주석은 이듬해 팍스 시니카 구축의 기반으로 일대일로 계획을 발표했다. 일대일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와 중국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하는 말로 아시아·아프리카·유럽 3대륙을 연결해 중국 중심의 경제권을 형성하는 초대형 국가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중국은 이미 전 세계 100여 개국과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자 중국의 중화주의가 미국우선주의와 충돌했다. 자연히 두 나라 사이에 무역전쟁이 벌어졌다. 미국이 먼저 중국에 무차별적인 무역보복을 가하고 중국이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 양국의 무역전쟁은 계속 확산해 전면전으로 치닫았다.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미중 무역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동맹을 동원하거나 경제영토를 확장해 진영 간 싸움을 벌이는 세계전쟁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최근 바이든 미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동맹국의 기업인이 참석한 회의를 열어 반도체자립을 선언했다. 중국은 반도체를 중국의 기술발전을 막는 무기로 삼는다고 반발했다. 미국이 주도해 추진하는 더 나은 세계 재건사업과 중국이 시행하고 있는 일대일로사업의 충돌은 미중 패권전쟁의 전면적인 확산을 뜻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다. 미·중 두 나라 중 한나라가 쓰러지지 않으면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미·중 패권전쟁의 틈에서 한국경제의 운명은 한국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 한국경제가 경쟁력을 잃어 양국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전쟁의 포로가 되어 희생의 위기를 맞는다. 반면 강력한 경제와 국력으로 양국이 압박대신 도움을 청하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렇다면 첨단기술로 무장한 신산업을 대대적으로 일으켜 경제강국의 힘을 기르는 것이 답이다. 현재 진행 중인 4차산업혁명은 한국경제의 숙명적인 과제다. 성공을 앞당겨 미래산업을 선점하면 한국경제는 경제전쟁의 포로에서 승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4차산업혁명은 경제핵무기나 마찬가지다. 먼저 개발해 보유하는 나라가 경제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제정책은 우물 안 개구리식이다. 최근 세계 각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성장정책을 집중적으로 펴고 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미중 패권전쟁이 확산하면서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저금리 정책을 펴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한국은 정부가 시장기능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면서 재정지출로 소비를 활성화하고 복지를 늘리는 분배정책을 집중적으로 펴고 있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낮춰 통화 공급을 대규모로 확대했다. 결과는 경제의 역주행이다. 경쟁국들에 비해 산업발전이 부실하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졌다. 고용은 극도로 불안하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풀린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 경제가 거품으로 들떴다. 가계·기업·정부부채가 동시에 증가해 부도위험이 높아졌다. 정부정책이 경제의 추락을 재촉하고 경제전쟁의 패자로 만드는 역작용을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반기업 정책이다. 다른 경쟁국들과는 달리 규제와 조세를 강화하고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을 강제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높여 자율적 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반기업 정서가 나타나고 기업가 정신이 사라져 창업·투자·신산업 발전이 힘을 잃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민간기업 90%이상이 반기업 정서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과거의 전쟁은 영토전쟁이지만 오늘날의 전쟁은 경제전쟁이다. 기업은 경제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군대 역할을 한다. 미중 패권전쟁에서 한국경제를 지키고 승리를 가져와야 할 기업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경제전쟁에서 패자로 희생되면 나라는 희망이 없다. 정부경제정책의 대전환과 기업환경개선이 시급하다. 안타깝게도 정치권과 정부는 밖에서 경제전쟁의 포탄이 터지는데 안에서 정치전쟁을 벌이며 선거용 돈 풀기에만 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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